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석양의 낙조를 많이 보는 것도 공부이다. 가슴을 여는 짙은 감동이 있다. 분노와 배신감을 다스리는 데에는 낙조만 한 게 없다. 볼만한 낙조는 삼천포 수산시장에서 회 한 접시 먹고 보는 실안 낙조, 해남 미황사의 명부전 축대에서 바라보는 낙조, 진도의 세방 낙조가 기억에 남는다. 낙조 따라서 이번에는 제주도 모슬포 낙조를 보러 갔다. 모슬포에 며칠 머물러 보니까 이쪽의 특징은 바람이 세다는 점이었다. 50대 후반이 되면 머릿속에 쌓인 찌꺼기가 많아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모슬포의 쌩쌩하면서도 오싹한 바닷바람은 머릿속을 정화하는 작용이 있었다. 바람이 춥다는 느낌보다는 먼지를 떨어주는 청량제라는 반가움이 앞선다. 바다의 야성이 느껴지는 포구이다. 저녁 무렵이면 모슬포 바닷가 어느 카페에 앉아서 낙조를 보았다. 카페 주인과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모슬포는 왜 이렇게 바람이 셉니까?” “그래서 옛날에는 ‘못살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세고 물살이 세니까 돌고래가 이 근방에 많이 서식합니다. 돌고래를 제주 사투리로 ‘수애기’라고 부릅니다. 제 어머니도 해녀인데 모슬포 해녀들이 상군에 많이 속합니다.” 해녀도 상군, 중군, 하군이 있다. 상군은 30m 이상 잠수 능력을 보유한 베스트 해녀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모슬포 앞바다에는 수애기(돌고래)가 200~300마리쯤 서식한다고 한다. 양어장에서 뿌리는 사료 찌꺼기가 바다로 흘러나오면 잡어들이 이 사료 찌꺼기를 먹으려고 모여들고, 수애기들이 다시 이 잡어들을 먹으려고 모여든다. 특히 모슬포는 바닷속에 암초가 많고 물살이 세다는 점도 수애기가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모슬포 앞의 가파도, 마라도에 서식하던 물고기들이 여기로 몰려든다. 모슬포 해녀들은 잠수를 하다가 수애기들이 보이면 물에서 철수한다. 곧이어 수애기를 먹이로 삼는 상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겨울철 눈 내릴 때 방어도 많이 잡힌다. 특히 대방어는 8㎏ 이상 크기를 가리킨다. 12월, 1월의 모슬포 대방어 뱃살을 묵은 김치에 싸서 먹는 맛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해준다. 겨울에 모슬포 대방어 맛도 못 보고 지나가 버리면 인생을 고생만 하다 살고 가는 셈이다. 모슬포수협 1번 중매인 이승욱(49)에 의하면 ‘법환포는 자리돔이 많이 잡히고, 성산포는 갈치, 조천 포구는 한치, 태흥리 포구는 옥돔이 잡힌다’고 한다. 포구마다 개성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