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냉전 종식 후 미국에 필적할 만한 나라는 없었다. 누구나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9·11이었다. 초강대국 미국의 본토, 그것도 뉴욕 심장부가 국가도 아닌 일개 테러 단체에 타격당한 충격은 컸다. 당시 백악관을 장악한 네오콘은 미국의 강한 모습을 다시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믿었다. 차제에 미국의 패권에 상처를 입힐 위험 국가를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테러와 전쟁을 벌인다고 선언한 미국은 주적 셋을 꼽았다. 이란, 이라크 그리고 북한이었다. 이른바 악의 축(axis of evil)이다. 인접한 중동 두 나라와 동북아의 북한을 잇는 악의 축은 자연스럽게 2차 대전의 추축국(axis)을 연상시켰다. 인접한 독일, 이탈리아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 일본과 이어지는 파시즘 연대는 악의 축과 묘하게 겹쳤다. 지정학적 코드의 복제판이었다. 의아했다. 테러와 전쟁하려면 알카에다부터 손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카에다와 상관이 없는 세 나라가 미국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실제로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은둔해 있는 테러 세력 알카에다는 시간을 두고 집요하게 처리하면 된다고 믿었다.

이란 압살 위해 취약한 이라크부터 공격 미국 눈에 제일 위험한 세력은 사실 이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은 악의 축 세 나라 중 왜 이라크 전쟁부터 시작했을까? 지정학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일종의 이란 압살 작전으로 볼 수 있었다. 대국 이란을 직접 치는 것은 위험했다. 이란은 당시 20년 넘는 미국의 제재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체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견고했다. 반면 이라크는 전체 인구의 80%가 반(反)사담 세력이었기에 부담이 작았다. 더욱이 1990년 걸프전을 치른 경험도 있었다. 가장 쉬운 목표물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 인도를 거부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미 전쟁하고 있었다. 당시 지도를 보면 묘한 그림이 나온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각각 이란의 동·서 접경 국가다. 세계 최강 미군이 바그다드와 카불 정부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란의 심정을 상상해보자. 미국의 최대 적국으로 규정된 이란에는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좌우의 압박뿐만이 아니었다. 북쪽으로 중앙아시아에는 우즈베키스탄 하나바드를 비롯,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등 미 공군 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남쪽 페르시아만은 미 5함대 소속 항모 전단이 드나들었다. 이란 사방이 미군이었다. 흡사 바둑판에서 대마를 잡으려는 듯 이란을 전방위로 포위, 압박하는 포석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즈음 이란 핵 개발 의혹이 터져 나왔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친미 민주 정부만 들어서고 안정된 번영의 틀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보았다.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민주주의 물결이 이란으로 스며들 것이라 생각했다.

이란 포위 작전은 거꾸로 '親이란 시아派 벨트'로 역전

그러나 상황은 거꾸로 흘러갔다. 테러 세력의 창궐로 이라크 안정화가 어려워지면서 사달이 났다. 아프가니스탄 역시 흔들렸다. 미국이 지지하는 카불 정부가 제대로 서지 못했던 것이다.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다. 이라크는 다수 시아파가 집권하면서 친미가 아닌 친이란으로 변해갔다. 이란의 영향력은 이라크를 발판으로 더욱 서진(西進)했다. 시아파의 변종 알라위파인 시리아 아사드 정부와 이란이 더욱 가까워졌다. 내전 이후 민병대를 파견, 다마스쿠스를 도우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이란은 레바논 시아파 정파인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도 늘렸다. 이른바 시아파 벨트가 그려졌다. 이란의 힘이 아라비아반도 북부 레반트 지방을 관통하여 지중해로 연결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란은 걸프 해역을 건너 사우디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원래 사우디 동부 지역은 시아파 거주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카타르가 독자 노선을 걸으면서 이란과 가까워졌다. 오만과 쿠웨이트는 이란과 사우디 사이 중립에 서 있다. 예멘 시아파 후티 반군은 반정부 저항운동을 벌이면서 이란과 협력해왔다. 이렇듯 이란의 영향력은 시아 벨트에 더하여 말발굽 모양으로 아라비아반도를 포위하고 있다. 이처럼 이란은 역내 협력국을 점차 넓혀왔다. 군사 충돌보다는 세력 확장에 나섰다. 적진에 집을 지으며 상황을 반전시켰다. 아라비아반도를 공세적으로 포위하며 지정학적 역포석에 성공한 셈이다. 카타르의 친이란화가 대표적 사례다.

터키의 부상, 예멘 반군의 태도 변화로 이란에 불리한 기류 2019년 말 현재, 여전히 중동에서 이란의 존재감은 확고하다. 다만 조금씩 이상 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란이 가장 공들여 온 이라크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외세, 특히 미국과 이란의 개입을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란이 민병대를 보내 관리해 온 시리아 북부에서는 라이벌 터키가 세를 넓히고 있다. 이미 유프라테스 동부 지역에서는 이란의 퇴조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상대적으로 터키의 입김이 세졌다. 예멘 후티 반군 역시 이란과 함께하기를 꺼리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고립주의 노선을 줄곧 이야기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견제를 위해 중동에 미군을 증파할지 모른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란이 역전시킨 세력 판도가 어쩌면 흔들릴지도 모르는 징후가 조금씩 보인다. 그중 이라크가 변수다. 사우디와 터키가 경쟁적으로 바그다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거에 이란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 지점이기 때문이다. 수 싸움에 따라 지정학적 판세가 바뀌곤 한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 빗대어 국제 정세를 풀어냈다. 지금은 상대를 판에서 끌어내리며 승리를 추구하는 체스판이 아니다. 말을 잡는 대신 한 땀 한 땀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싸움이다. 복잡하게 세력 판도가 얽히면서 적진에 집을 짓고 때론 패를 쓰기도 하는 거대한 바둑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