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여기에 적어 주세요."

김의겸〈사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상가주택을 위탁 거래하는 서울 흑석동 A 공인중개 사무소를 4일 찾아가 "신문에 난 김의겸 상가주택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중개업자는 이런 대답과 함께 메모지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앞서 다녀간 이들이 적어낸 메모지를 들어 보였다. '35억', '37억' 등의 숫자가 보였다. 경매장 같았다.

김 전 대변인은 이달 1일 페이스북에 "청와대 대변인 시절 물의를 일으켰던 흑석동의 집을 판다"고 적어 올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흑석동 일대 부동산엔 매수 문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인근 B공인중개 관계자는 "일요일에도 전화가 끊임없이 왔고 월요일, 화요일에도 방문 고객이 많았다"고 했다.

기자가 상담하는 동안에도 A부동산 사무실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한 문의자는 "부동산 수수료를 원하는 대로 줄 테니 나한테 팔라"고 말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현금 들고 와서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일단 기다려달라"고 했다. 김 전 대변인의 상가는 결국 이날 38억원을 제시한 한 노부부가 가계약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작년 7월 매입했다 최근 매물로 내놓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 인근 재개발 지역의 상가 건물. 김 대변인은 1년 5개월 만에 11억여원의 시세 차익을 보게 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부동산 중개업소들에선 "더 높은 금액을 적고 가시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통상 거래 가격의 10%인 정식 계약금보다 훨씬 낮은 금액의 가계약금만 넘어간 상태여서, 가계약금 배액(倍額)을 물려주고 계약을 깨도 괜찮다는 의미였다. 부동산 관계자가 이렇게 설명하는 도중 다른 직원은 "(김 전 대변인 건물 보러) 사모님 두 분이 곧 도착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변인이 38억원짜리 계약을 매듭지을 경우, 1년5개월 만에 11억여원 차익을 볼 수 있게 된다. 김 전 대변인은 작년 7월 대지 272㎡인 이 상가주택을 25억7000만원에 샀다. 매입하기 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전셋집에서 빠져나와 청와대 직원들을 위한 청운동 관사(官舍)에 입주했고, 돌려받은 전세보증금 4억8000만원은 매입 자금에 보탰다. 중개업소들이 '6억여원 대출 가능'이라고 광고한 집이었지만, 그는 고교 동창이 지점장으로 근무하는 은행에서 10억여원을 대출받아 집을 샀다. 자기 자본은 10억원 정도였다.

김 전 대변인 상가주택 일대는 최근 재개발 마지막 관청 허가를 통과해 곧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한다. 재개발 후 상가주택은 '34평 아파트 한 채 + 단지 내 상가'로 교환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대변인은 상가주택을 내놓으며 중개업소에 이례적인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일주일 안에 잔금을 모두 정산할 것 ▲세무 조사 등을 받을 수 있으니 매수 자금에 문제가 없을 것 ▲최대한 조용히 거래할 것 등이다. 단기간에 30억원이 넘는 돈을 마련하는 조건에도 문의는 끊이지 않았다. 한 매수 문의자는 이틀 전 "33억원을 전액 5만원권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김 전 대변인은 매매 금액을 '34억원 이상'으로 못 박았다고 한다.

11억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에 대해 김 전 대변인은 앞서 "매각한 뒤 남은 차액에 대해서는 전액 기부한 뒤 그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어차피 기부할 건데 왜 하한가를 설정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부동산 매각 차액 기부 선언에 대해 일각에선 '총선에 출마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자 김 전 대변인은 투기 논란으로 대변인직에서 물러난 지 8개월 만인 이달 3일 언론에 출연, "부동산 매각은 총선과 별개"라면서도 "유용한 곳에 제가 쓰임새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고 했다. 범여권에서는 "김 전 대변인을 존경한다"는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