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크리스토프'가 안나를 떠올리며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 짝사랑한테 차이고 나서 혼자 노래방에서 술 한 병 놓고 눈물 훔치던 제 대학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친구들이 혼자 멜로 영화 찍느냐며 위로 반 놀림 반 응원해줬던 그때가 딱 생각났어요." "영화를 함께 본 초딩 딸이 크리스토프 노래를 들려주며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 음악 아니냐'고 물어요. 크리스토프의 순수하고 우직한 사랑 고백이 요즘 우리가 잃어버린 감성이긴 하죠. 한 여자만 순정으로 바라보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처럼."

영화 '겨울왕국2'가 700만 관객을 돌파한 지난 30일 서울 강남의 한 극장에서 만난 몇몇 관객 반응이다. 안나를 사랑하는 크리스토프가 부른 '로스트 인 더 우즈' 장면 때문. 1980~1990년대풍 뮤직비디오 스타일인 데다, 순록 다섯 마리와 합창하는 장면은 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마저 연상시킨다.

위 사진은 TV조선 프로그램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해 '예능 대세'의 면모를 뽐낸 허재. 제주 폐교를 개조한 카페 '명월국민학교'. 아기자기한 걸상과 소품 등으로 '인스타 명소'로 떴다.

이름하여 '국딩 감성'이 요즘 대중문화계를 휩쓸고 있다. '국딩'은 과거 국민학교를 다녔던 이들을 칭하는 신조어. 요즘 초등학생을 '초딩'이라 부르는 데 착안했다. '국민학교'는 일제 잔재 청산 등의 이유로 1996년 공식적으로 사라진 용어로, 국민학교를 졸업한 현재 1983년생(빠른 1984년생)까지 국딩에 해당한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선 #국민학교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1만3000개가 넘는다. #국딩 #국딩시절 #국딩갬성(감성) 등 '국딩'이 들어간 단어까지 합치면 1000여개를 훌쩍 넘어선다.

국딩들은 '겨울왕국2'의 '사랑꾼' 크리스토프, '동백꽃 필 무렵'의 '촌므파탈'(촌+치명적 매력의 남성을 뜻하는 옴 파탈의 합성어) 용식이는 물론 지금은 아저씨가 된 농구 스타 허재에게 열광한다.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이자 스타 발굴터였던 드라마 '질투'나 '마지막 승부'에서 보았던 순정파 청춘 캐릭터들이 20년 만에 소환돼 인기를 얻는 것. 1980~1990년대를 풍미한 '농구대잔치' 세대가 열광했던 '농구 대통령' 허재는 최근 여러 예능에서 '허당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국딩은 물론 초딩 감성까지 저격하는 중이다.

소셜미디어에서도 국딩 콘텐츠가 인기다. '국민학교'라고 적힌 상장을 보여주고, 요즘 학교 운동회에선 보기 어려운 '차전놀이' '박 터뜨리기' 같은 사진들을 앞다퉈 올린다. 자신도 과거 '국민학생'이었음을 '인증'하면서 '내가 살아 있는 전설' '나도 레전드'라고 소감을 올린다.

'국민학교'를 아예 상호로 내세운 곳들도 생겼다. 제주도의 폐교를 개조한 카페 '명월국민학교'는 인스타그램 명소로 꼽힌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뉴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복고가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90년대 대중문화 전성기를 주도했던 X세대들이 '아재' '낀세대' 취급받으며 의기소침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갖는 현상 중 하나로 보인다"면서 "과거에는 나이 먹는 것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었다면 '국딩'이라는 문화적 놀이로 당시 세련된 대중문화를 이끈 주역으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긍심을 맘껏 표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1990년대 트렌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화적 퇴행'이란 의견도 있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세대 갈등이 첨예한 요즘, 희망이 있었던 1990년대를 불러내는 도구로 '국딩 세대'라는 놀이 공동체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도전적 시도 없이 안정된 인기를 바라며 1990년대 스타일에 의탁해 콘텐츠를 반복 재생하는 건 문화적 퇴행일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