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28일 입장문에서 "관련 제보를 단순 이첩한 이후 그 사건의 처리와 관련한 후속 조치에 대해 전달받거나 보고받은 바조차 없다"고 했다. 청와대도 "하명 수사가 아닌 당연한 절차"라고 했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 의혹 첩보를 이첩받았던 경찰이 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사건 종결 때까지 모두 9차례 청와대에 수사와 관련된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와 백 전 비서관이 "단순 이첩일 뿐 경찰 수사엔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야당은 "전례 없는 선거 개입이자 정치공작"이라고 했다.

경찰 "靑에 9차례 수사 상황 보고"

경찰청은 이날 오후 4시 진행한 브리핑에서 "청와대에는 (김 전 시장 수사 관련) 언론 보도 상황, 정당에서 이의 제기한 상황 등 정보를 공유했다. 첩보가 아니더라도 중요 사건이나 언론 보도 사건은 (청와대에) 정보 공유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지난해 3월 16일) 압수수색 이전에 청와대에 대한 보고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정보 공유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별도 언급이 "일절 없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3시간 뒤인 오후 7시쯤 경찰청은 "관련 기록을 다시 찾아보니 지난해 2월쯤 울산경찰청으로부터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받은 뒤 BH(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말이 바뀐 것이다. 본지가 다시 확인을 하자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일 기준으로 그전에 한 차례, 그 뒤에 8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했다.

경찰은 압수수색 사실을 청와대에 사전에 보고한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이 확보한 자료에는 압수수색 당일 경찰이 청와대에 '오늘 오후 압수수색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 수사 보안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일일이 보고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런 정황으로 미뤄 사실상 청와대가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원우, 김기현 첩보만 전달"

경찰에 따르면, 김 전 시장 의혹 첩보 문건은 지방선거를 약 7개월 앞둔 2017년 11월 청와대에서 경찰청으로 전달됐다.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에 파견된 경찰 출신 행정관이 행정봉투에 밀봉한 채로 가져왔다고 한다.

청와대 특감반 출신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은 "정권 초 수사기관에 의혹을 이첩하는 건 민정수석(당시 조국 수석)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이첩할 때 봉투 밀봉은 당연한 절차"라고 했다. 청와대로부터 관련 첩보를 넘겨받은 경찰청은 이를 검토한 뒤 그해 12월 28일 우편을 통해 울산청에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첩보 문건을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전달한 백원우 전 비서관은 이날 "많은 첩보가 외부로 이첩되는데 반부패비서관실로 넘겼다면 울산 사건만을 특정해 전달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박 비서관은 검찰에서 "당시 울산시장 관련 문건만 백 비서관에게 직접 건네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첩보와 섞이지 않고 보고서 형태로 정리된 울산시장 관련 문건만 별도로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첩보 이첩이라는 백 전 비서관 해명과는 차이가 있다. 한 변호사는 "드러나는 상황만 놓고 보면 선거 개입 의혹을 피하기 위해 백 전 비서관이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첩보 문건 작성자 누구인가

검찰도 청와대 첩보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해당 문건에는 김 전 시장 가족과 주변에 대한 정보가 총망라됐고 이는 곧바로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며 "정보 수집을 오래 했던 '프로(전문가)'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백 전 비서관은 '단순 제보'를 담았다는 식으로 밝혔지만, 문건 작성에 정부 기관 관계자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시장 수사를 한 울산경찰청에 해당 첩보 생산 여부를 물었지만 "청와대에서 받았을 뿐 첩보를 만들어 올린 적은 없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원들도 관련 첩보를 생산한 적이 없다고 검찰에 밝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울산 지역에서 정보가 만들어져 정치권에 전달됐고, 이것이 백 전 비서관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