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작년 6·13 지방선거 직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상대로 대대적 수사를 벌인 것과 관련한 논란의 핵심은 청와대가 여기에 개입했느냐이다. 그랬다면 청와대가 야권 후보였던 김 전 시장을 주저앉혀 결과적으로 여권 후보를 도운 것이 된다.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이 될 수 있고 정치적으로도 큰 파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검찰은 청와대가 경찰 수사를 통해 작년 울산시장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여러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지검이 수사하던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최근 넘겨받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우선 사정 기관을 총괄하는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에게 '김기현 첩보 문건'을 넘긴 사람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백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통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 밑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다.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캠프의 조직본부 부본부장을 맡았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할 때 "사죄하라"고 고함을 치며 뛰어나가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작년 울산시장 선거에서 김 전 시장과 맞붙었던 민주당 후보는 송철호 현 울산시장이다. 송 시장은 문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 당시 지원 유세를 왔던 추미애 대표는 "'인권변호사 친구, 동지 송철호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문 대통령 마음"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백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30년 지기(知己)인 송 시장 당선을 위해 야당 후보 첩보 문건을 경찰에 하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민정수석실의 비위 첩보 수집 대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 등이고, 선출직 공무원은 대상이 아니다. 비위 첩보 수집은 반부패비서관의 업무이고, 민정비서관은 민심 동향 파악 등이 주 업무다. 그런데도 백 전 비서관이 월권을 해가며 이런 첩보를 전달해 사실상의 선거 개입을 한 데는 이런 인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첩보 문건이 경찰에 내려갈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조 전 장관도 송 시장이 2012년 총선에 출마했을 때 선거대책본부장, 후원회장을 맡은 바 있다. 조 전 장관도 선거 개입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그는 사모펀드 불법투자, 자녀 입시 비리 등 애초에 시작된 수사 외에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특감반의 감찰 무마 혐의, 선거 개입 의혹 등 세 갈래 수사를 받게 됐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는 비위 첩보가 접수되면 정상 절차에 따라 이를 관련 기관에 이관한다"며 "당연한 절차를 두고 마치 하명(下命) 수사가 있었던 것처럼 보도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첩보를 내려준 것은 맞지만 하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청와대가 깊게 개입한 단서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기현 첩보 문건'의 내용도 주요 물증의 하나로 보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문건엔 김 전 시장 본인과 동생, 측근들에 대한 여러 의혹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시장과 그 주변을 이 잡듯 뒤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 담겼고 분량도 상당하다"고 했다. 단순히 첩보 이관을 한 수준을 넘어 김 전 시장을 타깃으로 한 '수사거리'를 제공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청와대와 경찰청이 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것이 청와대가 경찰청으로부터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추가 지시를 한 단서일 수 있다고 보고 경찰 관계자들에게 소환 통보를 했지만 모두 불응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내려 보낸 문건 중엔 '사건 진척이 더디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시장의 첩보가 하달된 이후에도 청와대와 경찰청 사이에 이 사건 관련 지시 및 보고 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청와대가 상세한 첩보 문건을 건네 경찰로 하여금 수사를 하게 하고, 사후 점검까지 했다면 선거 개입으로 볼 수 있다"며 "정황상 청와대가 야당 후보를 흠집 낼 의도를 갖고 첩보를 수집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이 사건 수사에 수사 인력을 추가 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