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등 범여권 4당이 한국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 변경을 추진하는 선거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附議)됐다. 한국당이 '중대한 법률적 하자가 있다'며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부의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범여권 4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문 의장 의지에 따라 언제든 선거법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선거법 강제 변경을 막기 위해 8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여권의 강행 처리를 막을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문 의장은 "합의가 안 될 경우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한국당과 합의가 안 되더라도 범여권 의석만으로 선거법을 일방 처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본령이고 선거법은 그 규칙을 정해놓는 법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주요 정당이 동의 않는 선거법을 일방 통과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같은 원칙은 문 의장이 정치 스승으로 꼽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소신이기도 했다. 문 의장도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이고 여러 번 투옥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 의장이 평생을 바쳐온 신념에 반하는 일이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려고 하고 문 의장이 앞장서고 있다.

문 의장은 지난해 의장이 되면서 "국회는 민주주의의 끝이자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어느 일방의 독단을 막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선거법을 여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변경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 보루를 무너뜨리고 민주 헌정의 기초를 허무는 일이다. 더욱이 야당 대표가 단식 농성까지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선거법을 강행 처리한다면 민주주의를 파괴한 장면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문 의장 본인이 의사봉을 잡고 흑역사를 쓰는 데 앞장서지 않기를 바란다.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은 여당이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 군소 정당과 거래한 야합의 산물이다. 여기저기 손을 대다 보니 괴물 같은 모양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라도 문 의장은 '선거법만은 여야가 합의 처리해야 한다. 일방 강제 변경은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