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은 25일 북한이 스스로 황해도 창린도 해안포 도발을 공표하자 "9·19 군사 합의를 위반했다"고만 발표했다. 9·19 군사 합의를 위반했다는 건 북한이 서해 평화수역으로 설정된 바다를 향해 도발했다는 뜻이다. 다만 군은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도발했는지 "대북 정보 사안은 비밀"이라며 함구했다. 복수의 군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을 관영 매체를 통해 안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야당에서는 "군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고, 시간·장소조차 특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남쪽으로 사격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령도 남동쪽에 있는 서해 창린도 방어부대를 시찰해서 간부들과 지도를 보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25일 보도했다. 지도 속 남쪽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에 해안포 사격 방향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선(붉은 원 내부)이 그어져 있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 창린도는 서해 5도 중 하나인 대청도에서 동쪽으로 37㎞,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는 18㎞가량 떨어진 곳이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공개한 사진에는 고사포로 추정되는 포의 모습만 담겼고, 해안포는 없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은 이 지역에 사거리 13㎞의 76㎜ 해안포는 물론, 122㎜(사거리 15㎞), 130㎜(사거리 27~30㎞) 해안포도 배치해두고 있다"며 "이 해안포들의 실사거리 사격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해안포 갱도는 모두 남쪽을 향해 있기 때문에 도발은 섬 남측 바다를 향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130㎜ 방사포를 쐈다면 NLL을 넘었을 수 있지만, 군은 "포의 탄착 지점이 NLL을 넘어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NLL을 넘은 포 사격은 군사 합의 위반을 넘어 영해를 침범한 행위로, 우리 군 역시 대응 사격에 나서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북한은 통상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 관련 행적을 1~2일 뒤에 공개하기 때문에 도발은 23~24일쯤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평도 포격 도발 9주기(23일)에 맞춘 도발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 군이 언제 북한의 도발 사실을 인지했는가이다. 군은 이날 북한의 창린도 도발 사실에 대해 "SI(Special Intelligence·특수 정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SI는 일반적으로 신호 정보와 도·감청 정보를 뜻하는데 군의 설명이 맞는다면 실시간으로 북한의 서해평화수역 내 도발을 알았던 셈이다. 이렇게 되면 군이 북한의 9·19 군사 합의 위반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군은 이날 북한에 대한 유감 성명을 기자들의 질문이 있고 나서야 발표했다. 이와 관련, 군 고위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북한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려 했느냐'는 질문에 "적절히 판단해 처리하려고 했다"고만 했다.

야당에서는 군이 도발 사실을 아예 몰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 측은 "우리 군은 북한의 해안포 포문 개방 및 발사 사실을 적시에 인지하지 못했고, 북한의 발표가 없었다면 발사 지점조차 특정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국방부는 그동안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신형 방사포 등으로 도발을 계속해도 "9·19 군사 합의 위반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끊임없는 정전협정 위반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때로는 전쟁의 위협을 고조시켰지만, 지난해 9·19 군사 합의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위반 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경두 국방장관 역시 이와 같은 기조에 맞춰 "군사 합의는 잘 지켜지고 있으며, 북한의 (NLL 일대) 포문 개방 행위는 적대 행위라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대해 "9·19 군사 합의 정신에는 어긋날 수 있지만, 합의 위반은 아니다"라고 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북한이 스스로 도발을 공표하자 처음으로 9·19 군사 합의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군은 이번 도발에 대한 항의 등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이미 국방부 차원에서 '유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며 "또 다른 후속 조치는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