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웽~. 까무룩 든 잠이 깼다. 여름내 뭐 하다 지금 설친담. 얼결에 맨손으로 후렸다. 잡혔으려나, 불을 켜 본들. 손바닥에도 뺨에도 핏자국커녕 털끝도 안 보인다. 전기 모기채 챙겨 드는 수밖에. 견문발검(見蚊拔劍)이 따로 없다. 만물의 영장(靈長)답지 못하게 호도깝스럽기는. 이 말엔 ‘답게’ 저 말엔 ‘스럽게’…. 뚜렷한 줄 알았던 경계가 아리송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사흘거리로 나온 신문 제목이 그렇다.

〈'조국스러운' 검찰 출두〉 〈'조국스러운' 면회 특혜〉. '스럽다'는 앞말의 특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답다' 또한 그런 특성을 보이면서 이름에 걸맞음을 드러낼 때 쓰는 접미사.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어른'이랑 어울릴 때 큰 차이가 나타난다. '어른답다'는 이미 어른인 사람이 어른으로서 자격을 갖췄을 때 쓴다. '어른스럽다'는 어른이 아닌데 언행이 어른 같음을 이른다.

다른 점이 더 있다. '답다'를 접미사로 둔 사전 올림말은 몇 안 되지만 실제로는 여럿이, 심지어 외래어도 '답다'와 어울린다. '스럽다'는 수두룩하게 오른 표제어 외에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나라, 도깨비, 맥주, 승용차, 주장, 캠프파이어, 호랑이'에 '답다' '스럽다'를 각각 붙여보면 안다.

'답다'는 긍정적, '스럽다'는 부정적 어근(語根·낱말의 실질적 뜻을 나타내는 중심부)과 결합하는 비율이 높다. 물론 반대도 꽤 있다. '답다'는 대체로 물질명사를 만나 새 생명을 얻는데, '스럽다'는 그러지 못한다. '보배, 어른, 여성, 촌(村)' 따위 말고 어울리는 물질명사를 찾기 어렵다. 사람 이름 같은 고유명사야 말할 나위 없다. 불문(不文) 규범상 '조국답다'는 돼도 '조국스럽다'가 성립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도 제목으로 올린 뜻이야 짐작 못 하랴. 자격 미달, 말이 안 되는 상황, 대체로 부정적인 쓰임새까지 버무린…. 이런 눈총 받는 사람이나 이런 표현 쓰는 언론이나, 소망(所望)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겨울다운 겨울은 언제쯤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