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취지는 "비자 발급 심사 다시"
비자 발급·입국 심사 등 여러 관문 남아
단계별로 재차 소송 이어질 가능성 커

미국시민권 취득에 따른 병역기피 시비로 내려졌던 입국 금지조치가 일시 해제된 가수 유승준씨가 2003년 6월 2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입국이 금지됐던 스티브 유(43·한국명 유승준)는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까. 법조계에서는 최소 몇 년간은 입국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법원 재상고심을 거쳐 판결이 확정되면 비자 발급 심사를 다시 받을 수 있지만, 외교 당국이 발급을 거부할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비자가 나오더라도 출입국 당국이 입국을 거부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한창훈)는 지난 15일 유씨가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유씨는 2002년 1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병무청은 직후 법무부에 유승준의 입국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부는 같은해 2월 입국 금지 결정을 했다. 유씨가 한국 비자 발급 신청을 한 것은 이로부터 13년이 지난 2015년 8월이다. LA영사관은 "입국규제 대상자에 해당해 사증 발급이 불허됐다"며 유씨의 부친에게 전화로 통보하고 여권과 비자발급 신청서를 돌려줬다.

법원은 영사관의 처분이 부적절하다고 봤다. 유씨의 부친에게 전화로 처분 결과를 통보한 것과 13년 7개월 전의 입국 금지 결정을 근거로 삼은 점 등 비자 발급 심사에서의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유씨 측은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국 금지 결정의 실체적 위법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한 판단은 보류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재판 결과를 따라야 한다는 법규 때문이다.

재판부는 유씨의 비자 발급을 놓고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뒀다. 우선 재외동포법과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비자 발급과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유씨는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행할 수 없는 나이가 되자 국내에서 경제활동이 가능한 재외동포 체류자격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며 "유씨가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서 가수활동 등을 하며 경제적 이익을 거두게 된다면 국민의 건전한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병역의무 부담에 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될 것이며 향후 비슷한 방법으로 병역의무를 면하려는 풍조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재외동포법 단서 조항에 따라 입국을 허가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썼다. 대한민국 남성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국적을 상실한 경우에도 41세가 된 때에는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재판부는 "유씨에 대해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가혹해 보인다"며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과정과 태도에 관해 유씨는 많은 국민으로부터 오랫동안 질타와 비난을 받아 나름대로 대가를 치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와 재외동포에 대한 체류자격 부여는 법무장관의 권한이다. 유씨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유효하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다. 영사관이 유씨에 대한 비자를 발급하더라도 공항에서 입국이 금지될 수 있다. 이 경우 유씨가 다시 소송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법조계에서는 "다음 재판의 쟁점은 유씨가 대한민국의 사회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지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