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워싱턴의 오물을 청소하자(Drain the Swamp)'는 구호를 앞세워 2016년 대선에서 집권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미 국민의 분노를 자극한 구호였다. 실제로 2015년 10월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9%가 '워싱턴(주류 정치)에 분노를 느낀다'고 답했을 정도로 미국인들의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쌓여 있었다.

이제 그 분노의 부메랑이 트럼프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2016년 대선 때는 트럼프가 정치 신인이자 아웃사이더였지만, 이제는 그 스스로 기득권 정치인이 된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적 언사와 조롱, 저소득층에 불리한 건강보험 개편 등이 미국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 5일(현지 시각)과 16일 치러진 켄터키, 미시시피, 버지니아, 뉴저지, 루이지애나 5개 주(州)의 주지사·주의회 선거에서 1승 4패를 기록하고, 펜실베이니아주 등 일부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분노 투표'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트럼프는 이번 지방선거에 전통적 공화당 강세 지역인 켄터키주, 루이지애나주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했고 미시시피 주지사 선거에서만 이겼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트럼프를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주지사 선거가 아닌 지난 5일 펜실베이니아주 델라웨어 카운티 지방의회 선거라고 분석했다. 카운티 의원 3명을 뽑은 이날 선거에서 민주당이 3석을 모두 차지했고, 그 결과 지역구 의원 5명이 모두 민주당이 됐다. 이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이 지역구가 남북전쟁 이후 단 한 차례도 공화당이 다수당을 내준 적이 없는 지역구이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주 교외에 자리 잡은 곳으로 인구 구성도 백인 71%, 흑인 20%로 전형적인 공화당 텃밭의 모습이지만 유권자들은 완전히 민주당으로 돌아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주는 미 대통령 선거를 결정짓는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대표적인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러스트벨트인 미시간주에서 0.3%포인트,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주에서 각각 0.7%포인트 차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이겨 당선됐다. 교외의 소외된 노동자들과 중산층 이하 백인의 폭발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라이언 콘스텔로 전 펜실베이니아 주하원의원은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민주당이 단 한 차례도 이겨 본 적이 없는 (펜실베이니아의) 여러 카운티 선거에서 이겼다"며 "이런 민주당 바람의 이유는 단 하나, '안티 트럼프'"라고 말했다.

분노 투표 양상은 지난 5일 치러진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에서도 나타난다. 버지니아 정치 전문 웹사이트인 VPAP.ORG에 따르면 올해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 투표율은 43%로, 2015년 29%에 비해 14%포인트나 높았다. 1999년 36.1%, 2003년 30.8%, 2007년 30.2%, 2011년 28.6%, 2015년 29.1% 등으로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졌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올해 버지니아 총선 투표율은 1995년(52.2%)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야말로 트럼프와 공화당에 분노한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대거 몰려나왔다는 뜻이다. 그 결과 민주당은 26년 만에 주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CNN은 17일 공화당이 전날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서마저 패한 것을 거론하며 "트럼프의 (선거) 마법이 증발했다"고 했다. 루이지애나는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를 약 20%포인트 차로 이겼던 곳이다. CNN은 "트럼프가 자신이 공화당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민주당에 투표하려 하는 사람들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에겐 여전히 '현직'이란 최대의 프리미엄이 있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우리 위대한 농민들은 추수감사절 전에 '현금'을 또 한 번 받게 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중국은 다시 농산물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일본과도 (농산물 수입) 거래를 끝냈다. 즐겨라!"라고 했다. 미·중 무역 전쟁을 이유로 자신의 텃밭인 중부의 농장지대에 보조금을 뿌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직 선거까지 1년 정도 남은 데다,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만큼 지방선거 결과로 섣불리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