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본 정치사에서 기록을 또 하나 세운다. 총리 재임 일수 2887일을 돌파, 1901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서 2886일을 재임한 가쓰라 다로(桂太郞) 전 총리를 밀어내며 전전·전후(戰前·戰後)를 통틀어 최장수 총리에 오른다. 2006년에 이어 2012년 12월 다시 총리가 된 아베는 재임 일수에서 차례로 요시다 시게루(2616일), 이토 히로부미(2720일), 사토 에이사쿠(2798일) 총리를 제쳐왔다. 13년 전 '전후 51세 최연소 총리'가 됐던 그는 다음 달 만 7년 연속 총리로 재임하는 기록도 세운다.

아베를 일본 정치사에서 기록의 사나이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경제다. '세개의 화살'(기동적 재정 정책, 양적 완화, 미래 성장 정책)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를 임기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국내외에서 "무모하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끈질기게 밀어붙여 경제에 활력을 가져왔다. 결과는 수치가 입증하고 있다. 일본 증권거래소의 주요 주가지수인 닛케이 225는 2012년 아베가 집권할 때 8000 수준이었으나, 지난 15일 현재 약 3배로 오른 2만3000대를 기록하고 있다.

아베 집권 1년 전인 2011년 일본 경제는 버블(거품) 붕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이너스 0.1%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집권 이듬해인 2013년 2%를 찍고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오면서 2017년과 지난해 각각 1.7, 1.1%를 기록했다.

2012년 4.3%였던 실업률은 지난해 완전고용에 가까운 2.4%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구직자 대비 구인자 비율을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은 0.8에서 1.61로 늘어났다. 7년 전에는 1인당 취업 가능한 회사가 0.8곳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한 사람을 놓고 1.61곳이 경쟁할 정도로 취직이 쉽다는 말이다. 올해 대학생 취업률은 97.6%에 달했다.

땅값도 지난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공실률도 마찬가지다. 아베 취임 전에는 10%를 넘겼지만 올해 들어 도쿄는 1.7%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도쿄의 3A(아자부주반, 아오야마, 아카사카) 지역은 이미 버블 당시의 부동산 가격을 회복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아베가 2차 집권하던 2012년 부채 총액 1000만엔 이상 기업의 도산은 1만2124건에 달했다. 이것이 작년에는 8235건으로 떨어졌다. 2012년 일본 전국의 자살자는 2만7858명이었으나 지난해는 2만598명으로 감소했다. 지지통신은 버블 붕괴가 절정에 이르렀던 2003년 자살자가 3만4427명이었는데 60%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런 경제 업적이 아베 장기 집권의 핵심 요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베가 일본 사회 전체에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무기력증에 빠진 일본 사회에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기가 돌게 했다는 것이다. 아베를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이는 많지 않지만 여론조사 지지율은 50%를 웃도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아베노믹스가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학에서는 이단 취급을 받는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에 기반해 "돈을 많이 풀어 인위적으로 경제를 부양한 것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받는다. 일본 정부의 부채는 지난해 1100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240%에 이른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아베의 장기 집권이 가능한 이유로 일본 야당을 꼽는 이도 많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에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3·11 동북부 대지진 대처에 무능했던 민주당 정권의 반사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는 그런 야당을 상대로 세 차례씩 있었던 중의원,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며 정권 지지 기반을 더욱 강화했다. 아베는 이런 지지세를 바탕으로 한·일 관계에 대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적 방어'로 나간다는 생각이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