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노라/ 하늘이란 하늘이 모두 모여들고/ 햇빛이 죽을 힘을 다해 밝은 거울로 비춰주는/ 이 대백두의 묏부리에 올라…'.

이근배(79) 시인이 기념시를 묶은 시집 '대백두에 바친다'(시인생각)를 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그는 우리 문단에서 기념시 청탁을 가장 많이 받아 온 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지난 1965년 광복 20주년 기념시를 비롯해 지난 반세기 동안 발표한 축시, 추모시, 비문(碑文) 등 53편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았다. 시인은 "돌이켜보면 내게 맡겨진 한 시대는 몹시도 가파른 고갯길이었다"며 "나라 안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부름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서울 시청 앞에 들어선 서울 도시건축전시관 옥상에 이근배 시인이 섰다. 그는 2004년 서울광장 개장 기념시에서 ‘북한산이 봉황으로 날아오르고/ 한강은 청룡이 되어’라고 노래한 바 있다.

시집을 펼치면 우리 사회 주요 순간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시인은 1986년 한강 개발을 맞아 '아침이 열린다/ 긴 역사의 숲을 거슬러 올라/ 어둠을 가르고 강은 태어난다'며 '흘러가라/ 역사에 얼룩진 땟자국이여/ 나라의 어지러운 비바람이여/ 겨레의 앙금진 핏물이여'라고 갈망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선 '50억의 가슴과 가슴이 용광로의 쇳물처럼/ 한 덩어리로 녹아 불꽃으로 솟으리라/ 이 이슬보다 맑고/ 태양보다 더 눈부신 역사의 아침'을 드높였다. 시인은 2005년 남북한 작가들이 백두산에 모인 새벽에 '달이 먼저 와서/ 어둠을 쓸고 있었다/ 이른 새벽 정한수 떠놓고/ 두 손 모두어 비는 어머니인 듯'이라고 읊기도 했다. 그는 2009년 광화문광장 준공식 땐 축시를 통해 '이 나라 역사 품어 안고 키운/ 빛의 솟을대문 광화문이 솟아올라라'고 기원했다. 2008년 윤봉길 의사 탄생 100주년 기념시에선 '매헌 의사가 던진 물통폭탄 하나로/ 우리는 패자가 아닌 영원한 승자가 됐고'라고 드높였다.

시인은 2011년 육군사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시도 썼다. '더 높이 더 멀리 타올라라/ 영광된 조국의 평화와 함께'라고 예찬했다. 그는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순국한 46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백령도에 세워진 위령탑 비문도 썼다. '그대들이 바친 목숨 영원한 성좌가 되어/ 길이길이 겨레 빛이 되리라'고 애도했다. 이처럼 다양하게 행사시를 꾸준히 써온 까닭에 대해 시인은 "나를 낳아준 산과 물 그 풀 한 포기, 흙 한 줌도 용암처럼 끓어넘치는 모국어의 가락임을 어찌하겠는가"라며 "나를 젖 물려 키우고 말과 글을 가르쳐준 이 땅에 태어난 너무도 눈부신 축복 앞에서 서툰 글자들을 써서 소지(燒紙)로 태울 뿐"이라고 밝혔다.

시인은 유명 문인들의 추모시도 잇달아 썼다. 지난해 문학평론가 김윤식 영결식장에선 '잉크를 찍어서 쓰는 붓이 아니라/ 영혼을 달이고 피를 삭히는 무릎으로/ 물경 2천만자의 대장경을/ 원고지에 각자(刻字)하여 '근대한국문학연구'를 비롯한/ 일백오십권의 명저들을 펴냈습니다'라고 기리는 노래를 읊었다. 시인은 "이 시집의 시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니고 나를 낳아준 흙과 물과 내가 살아온 시대가 흘리고 간 말을 주워담은 것"이라며 몸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