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주말뉴스부장

CJ엔터테인먼트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첫 방송은 3년 전. 대학교수인 친구는 금요일 저녁 '본방'을 사수하는 열렬한 예찬론자였습니다. 제자 취업률에 더 민감한 지방대 교수인 까닭도 있었을 겁니다. 가진 것 없고 학벌도 밀리며 '빽'도 없는 청년들 입장에서, '프듀'는 거의 유일하게 자기 능력만으로 성공하는 공정 사다리라고 했죠. 주지하다시피 지금 이 프로그램은 사기와 조작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요즘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중입니다.

새로 시작한 칼럼 '노정태의 시사철' 이번 소재도 '프로듀스 101'입니다. 이 순발력 있는 철학 에세이스트는 소위 대국민 투표의 조작을 보며 '사이버 직접민주주의의 환상과 허상'을 폭로합니다.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이건 공정(公正)을 최우선순위로 생각하는 요즘 청년들에 대한 교묘한 농락 아닌가. 소위 '공정 포퓰리즘'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포퓰리즘의 시대입니다. 미국의 트럼프도, 영국의 존슨도, 터키의 에르도안도, 그리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죠. 임기 절반을 채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때까지 혁신, 포용, 공정, 평화의 길을 흔들림 없이 달려가겠습니다."

포퓰리즘의 핵심은 국민이라는 단어의 자의적 선택에 있습니다.

지난번 태평로 칼럼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의사는 자기 딸이 되는데, 혼란과 피해는 왜 다른 자식들의 몫인가." 조국 사태 이후 밀어붙이는 정시 확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수시보다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의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학종과 달리, 정시의 핵심인 수능은 시험 점수로 결과가 나오니까요.

하지만 과반수로 선택할 게 있고, 전문가 숙의(熟議)로 결정할 게 있죠. 안타깝게도 교육 관련 대부분 연구와 논문은 수시보다 정시가 고소득층에게 더 유리한 제도라고 반복해서 열거합니다. 강남 학생들이 점수 따기 더 좋은 제도라고요. 과정은 공정해 보일지 몰라도, 결과는 정의롭지 않은 게 정시 확대입니다.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은 당신을 포함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