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불일암에서 지내던 시절의 법정 스님.

"당신의 가르침이 우리 강토에 들어온 지 천육백년. 오늘처럼 이렇게 병든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 까닭은 물을 것도 없이 제자 된 저희들 전체가 못난 탓입니다."

1964년 10월 25일 자 '불교신문'에 실린 글이다. 필자는 법정(法頂·1932~2010) 스님. 부처님께 올리는 이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스님은 당시 한국 불교를 매섭게 비판했다.

1960~1970년대 불교신문 논설위원과 주필로 활동했던 법정 스님은 논설, 시론, 에세이, 시 등 다양한 글을 썼다. 그동안 책으로 출간되지 않은 불교신문 게재 글 68편을 모은 '낡은 옷을 벗어라'(불교신문사)가 출간됐다.

반세기 전에 쓴 글이지만 법정 스님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적정처(寂靜處)'란 글에서 스님은 종교와 세속의 적절한 거리를 강조한다. "도시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러한 거리에서라야 내심의 소리(上求)와 바깥 소리(下化)를 함께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도자가 내심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최상급의 불행'이라고도 한다. 바흐와 베토벤, 드보르자크를 즐기던 스님의 서정적 글도 만날 수 있다.

법정 스님은 임종 전 '글빚을 남기지 않겠다'며 그동안 출간된 책들을 모두 절판시키라고 유언했다. 불교신문사 사장 정호 스님은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스님이 설립한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승인하에 출간하게 됐다"며 "책 판매 수익금은 불교 포교와 맑고 향기롭게의 장학 기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