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대학교 캠퍼스가 시위대와 경찰 간 전장(戰場)으로 변하면서 홍콩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의 학교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 대학생 1700여 명 중 상당수도 최근 며칠간 학교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주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13일 카오룽반도의 홍콩중문대 기숙사에 머물던 한국인 유학생 중 38명을 학교 밖으로 이동시킨 데 이어, 14일에도 오후 5시(현지 시각) 기준 한국인 학생 4명의 이동을 도왔다. 홍콩중문대엔 올해 4월 기준 한국인 학생 227명이 재학 중이다.

시위 현장에서 홍콩과기대 학생이 추락해 숨지고 홍콩직업교육대 학생이 경찰 총에 맞은 후 각 대학 캠퍼스가 시위 중심이 됐다. 홍콩중문대에서도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히 충돌했다. 시위대는 불을 붙인 화살과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이용해 진압했다.

홍콩 시위 현장에서 한 참여자가 ‘홍콩 경찰은 살인자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홍콩중문대는 시내 중심과 멀리 떨어져 교외에 있기 때문에 재학생 대부분이 기숙사에 거주한다. 캠퍼스가 있는 샤틴 지역에서 카오룽반도 끝자락인 침사추이 지역까지는 약 19km 떨어져 있다. 폭력 사태 격화로 학교 측이 휴교를 결정한 후에도 상당수 학생은 기숙사에 머물렀다. 학교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캠퍼스 내 시위 현장을 지나가야 하는 데다, 시내로 이동할 대중교통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13일 새벽 2시 30분쯤까지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다 잠시 소강 상태가 되자 기숙사에 모여 있던 한국인 학생 일부는 택시와 우버(차량 호출 서비스) 차량 등을 타고 학교를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총영사관 직원들은 이때 나가지 못한 학생 중 38명을 13일 하루간 차량을 이용해 공항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역까지 이동시켰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바로 공항으로 이동해 한국행 비행기에 탔다.

14일엔 대중교통 이용에 큰 어려움이 없어 학생들이 주로 자체적으로 학교를 벗어났다고 총영사관은 밝혔다. 이날 총영사관 차량을 이용해 이동한 홍콩중문대 학생은 4명이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유학생 총학생회 등과 논의한 결과, 다른 대학들은 캠퍼스가 시내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에 별 어려움이 없고 스스로 이동 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홍콩중문대는 여러 특수 상황이 있어 총영사관이 별도 지원을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4월 1일 기준 홍콩 대학엔 총 1723명의 한국 학생이 등록한 것으로 총영사관은 파악하고 있다. 홍콩대 재학생이 가장 많고 홍콩과기대, 홍콩시립대, 홍콩중문대, 홍콩이공대에 한국 학생이 주로 재학 중이다. 주말과 평일 밤 위주로 진행되던 시위가 이번주 들어 평일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면서 대부분 대학은 13일 이번 학기 남은 수업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학기가 조기 종료되면서 한국 대학생 다수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거나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총영사관도 학생들에게 일시 귀국을 조언하고 있다.

홍콩중문대 캠퍼스에서 13일 시위대가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유학 온 중국인 학생들도 속속 홍콩을 떠나고 있다.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던 친중국계 홍콩인이 폭행을 당하고 대학 캠퍼스 안에서 중국 본토 학생에 대한 위협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 본토인 약 100만 명 중 학생은 1만2000명 정도다. 이들은 우선 홍콩 인접 도시인 중국 광둥성 선전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조직인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선전 지부는 13일 홍콩에서 탈출한 중국 본토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임시 무료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대 HSBC EMBA 학생회도 홍콩에서 오는 대학생에게 7일간 무료 숙박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13일 홍콩중문대 캠퍼스에 있던 중국 본토 학생 80여 명은 홍콩 경찰의 도움을 받아 해양경찰 배를 타고 홍콩을 벗어났다.

시위대의 도로 점거와 대중교통 운행 방해로 홍콩의 모든 유치원, 초·중·고교, 특수학교는 14일 휴교했다. 14일 홍콩 교육국은 안전을 위해 15~17일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