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에 있는 한 치매안심센터엔 최근 하루에 몇 통씩 "치매 치료비 입금이 왜 안 되느냐"는 전화가 걸려온다. 지역 내 치매 노인 1100여명에게 매달 약값과 진료비를 3만원까지 지원하다 예산이 없어 6월부터 한 푼도 주지 못했다. 센터 관계자는 "주머니가 빠듯해 약값을 받아야 병원에 갈 수 있다는 분도 많은데,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 난감하다"고 했다.

전국 곳곳의 보건소나 치매안심센터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13일 보건복지부의 '치매 치료 관리비 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책정했던 예산 135억900만원 중 76억7700만원(57%)이 지난 5월까지 나가는 등 조기에 예산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신청자가 많은 지역에선 6월부터 지급이 밀려 5~6개월간 지원금을 받지 못한 곳들이 생겨났고, 현재는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자체에서 추가 예산을 신청한 상태다. 복지부는 "치매국가책임제 도입 이후 치료비 지원 신청이 예상보다 급증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현금 복지 펑펑 늘리더니 취약 계층에게 돌아갈 돈은 없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올해 정부와 지자체의 현금성 복지 예산은 41조원에 달한다. 지난해(28조여원)보다 무려 12조원 넘게 늘었다. 이런데도 형편 어려운 치매 노인에게 월 3만원 지원해주는 사업이 예산이 없어 멈춘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예산 고갈

치매 치료 관리비 지원은 지난 2010년 처음 시행됐다. 각 지역 보건소와 치매안심센터에 치매 환자로 등록된 사람 중 만 60세 이상,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인 경우가 지원 기준이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약값과 치료비 본인부담금을 월 3만원(연 36만원)까지 환급받을 수 있다. 국비로 50%(서울은 30%)를 보조하고 나머지는 각 지자체에서 부담한다. 지자체별로 예산이 부족해 일시적으로 지급이 밀렸던 적은 있지만, 국비가 바닥나 추가 예산 편성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지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지난달 올해 부족분 40억원에 대한 예산을 추가 편성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실제 집행은 이달 중순 이후에야 이뤄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장 지원이 끊긴 대상자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치매 노인 보호자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는 "보건소나 건보공단에 몇 번이나 문의해봤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온다" 등 불만이 쏟아진다. 한 푼 아쉬운 노인들은 지원이 끊긴 후 치료에 소홀해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무작정 지원 대상 늘리다… 월 3만원짜리 사업부터 '삐걱'

복지부는 예산 고갈이 "2년 전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이후 치매 환자 발굴이 늘면서 치료 관리비 신청자가 예상보다 크게 늘었다"고 했다. 2017년 9월부터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에서 고령자 대상으로 치매 검사를 늘렸는데, 이에 치매 판정을 받는 노인이 급증하면서 치료 관리비 지원 신청도 함께 늘었다. 2016년 11만4000명, 2017년 12만6074명이었던 치매 치료 관리비 지급 인원은 지난해 14만8158명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도 17만1211명에 달할 전망이다.

그런데 고령화와 더불어 치매국가책임제까지 시행되면서, 신청 증가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병원 치료를 받은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2014년 40만422명에서 지난해 68만1489명으로 5년 새 30만명 가까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소한의 타당성 조사도 없이 복지 가짓수와 지원 대상을 늘린 결과라고 지적한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 제도를 시작하기 전 예산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우선순위는 어디에 둬야 하는지 고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