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장소를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할 때, 그렇게 느끼고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겠으나, 내가 ‘숨’이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 보려는 것은 ‘마음의 생태(生態)’에 관련된 것이다.

우선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나는 소리글인 우리말을 쓰면서 자주 그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궁금해한다. 가령 '달'이라는 말은 그 천체를 잘 표상했다고 여기면서 감탄한다. 거기에는 'ㅏ'가 있으니 보름달이 들어 있고 'ㄹ'이라는 흐름소리가 들어 있으니 달의 운행을 잘 알려 준다.

'밥'도 참 잘 만든 말이다. 쌀로 만든 그 음식은 입에 들어가면 걸어잠그듯이 입을 다물고 목으로 넘기는 그 움직임을 잘 나타낸다. 서양에서 '영혼'의 어원은 '숨'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주 시사적이다. 요새 '영혼 없는 사람'이라는 욕이 있는데, 이는 숨을 쉬지 않는다는 뜻이고 따라서 시체라는 소리이니 참으로 참을 수 없는 명명이겠다. 그렇지만 기분 나쁜 것하고는 상관없이 우리는 스스로 영혼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송장이요 인류 사회에 장애물일 따름이다.

시인 정현종

'영혼' 대신 '마음' '정신'이라는 말을 써도 괜찮겠다. '하늘 땅에 바른 숨' 할 때의 숨은 올바른 정신, 올바른 판단을 뜻하는 것인데 요새는 그런 '바른 숨' 만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통치권자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안보 등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 당연히 제정신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그런지 알 수 없다. 어떤 정책 결정이 잘못되었으면 그걸 얼른 바꿔야 제정신일 터인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유기체가 생존하고 번성하려면 호흡기나 혈액 순환 등 여러 기관이 건강하게 작동해야 하듯이, 국가라는 유기체도 각 기관이 올바로 작동해야 한다. 특히 소통과 경청은 숨길과 같아서 그게 꽉 막히면 나라는 빈사 상태에 이른다. '기가 막힌다'고 할 때 그 '기'는 곧 '숨'이니, 그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면 당연히 망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누구든 별것도 아닌 이념에 중독되어 남의 숨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숨 막혀 자멸한다. 참고로 힌두교의 한 구루(guru)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 교사는 제자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진리를 말할 때 듣는 사람의 귀에 숨을 불어넣듯이 속삭였다고 한다. 진리는 말이 아니라 숨결이라는 듯이. 이런 태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겠으나, 자기의 속삭임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한 가닥 수줍음과 염치를 보인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