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집수리 건축가

승소율이 높지 않은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있었다. 그의 전략은 판사의 지적 판단력을 웃돌 만한 복합적 문제를 광범위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상대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령 의뢰인 소유 주택이 대지 경계선을 침범하여 타인 소유 대지를 점유했을 때 상대는 이에 대한 판례에 근거해 싸운다면, 그는 건축 당시 측량 기술의 부정확성이나 소유자 간의 미필적 합의 관행을 들이밀었다. 상대가 법리를 내세우면 그는 심리로, 판례를 주장하면 보편적 문화로, 당연을 말하면 상대의 지식이 닿지 않을 만큼의 전문적 영역을 거론하는 방식이었다. 말하자면 논리 루트를 복합적으로 재편하여 판사에게 부분적 동의를 얻어나가는 방식의 '설계'를 전해 듣곤 나는 "당신이 상대방 변호사였음 정말 미웠을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그를 응원했다.

그렇다면 변호사만 설계를 하는 것일까? 나의 어머니도 손님을 치를 때마다 상차림을 고민했었다. "이번엔 무얼 차려야 한담?" 그와 마찬가지로 출판사는 작가의 원고를 어떻게 편집하고 유통할 것인가에 대해, 농사꾼은 이듬해 파종할 품종에 대해, 타일공은 비뚤어진 벽면에 붙일 맨 마지막 장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 칸칸의 캐릭터와 배우 송강호의 극 중 이름을 '남궁민수'가 아니라 '냄궁민수'로 발음하는 시나리오를 만들 때, 여드름이 멍게처럼 돋아난 배우의 얼굴을 춘향이처럼 만들어야 하는 분장사도, 슈트를 만드는 재단사도, 승객의 행선지로 찾아가는 택시기사도, 강의록을 만드는 선생님도, 결혼식을 진행하는 사회자도, 머리를 깎는 미용사도, 도화지에 그릴 그림의 구도를 배치하는 것도, 기사를 모아 신문의 지면을 안배하는 것도 설계가 필요하다. 심지어 한계 중량을 넘지 않게 짐을 꾸리는 것도.

그런데 집수리를 의뢰하러 온 사람에게 "설계를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왜 놀라는 것일까? 집은 육신이 거할 곳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