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석 파리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앞두고 베를린 시내의 독일경제연구소(DIW)에서 알렉산더 크리티코스 연구위원을 만났다. 통일 이후 동·서독 격차를 연구해온 학자다. 크리티코스 박사에게 '한국이 통일을 하게 되면 어떤 결정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환율"이라고 했다. 남·북한 화폐를 몇 대 몇의 비율로 교환할지가 난제라는 것이다.

"북한 통화 가치를 너무 낮게 잡으면 북한 사람들이 손에 쥐거나 버는 돈이 적어 불만을 품고 죄다 남쪽으로 몰려갈 겁니다. 반면 너무 높게 잡으면 생산성이 낮은데도 고임금을 줘야 하니 북쪽 고용주의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이 생길 겁니다. 동·서독 마르크화를 거의 1대1로 교환한 독일이 그런 경험을 했죠. 최적의 교환 지점을 잡아야 할 텐데 그게 쉬울 리 있나요."

북측 돈 가치를 어느 수준으로 수용할지가 정치·사회적으로도 파장을 부를 거라는 얘기다. 크리티코스 박사는 화폐 교환을 예시로 막상 통일을 하면 칼날 위를 걷는 어려운 결정을 수없이 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다른 싱크탱크인 할레경제연구소(IWH)의 라인트 그로프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같은 맥락의 대화가 흘렀다. 그로프 원장은 동독 기업에 준 보조금 이야기를 꺼냈다. 통일 이후 독일 정부는 동독 국영기업들을 민간에 매각했는데, 민영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인수자가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했다.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으로 서독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양산되지 않도록 버팀목을 설치한 것이다.

그로프 원장은 "당시 상황에 비춰볼 때 필요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동독 기업들이 나랏돈을 받아 안주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며 "그 여파로 아직도 동독에 대기업이 부족해 동·서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통일을 하면 비슷한 보조금을 지급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준다고 하면 몇 년을, 얼마나 줄지도 정해야 한다. 모두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독일은 통일 충격을 줄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동독 엑소더스'를 막지 못했다. 동독 인구(베를린 제외)는 통일 당시 1700만명이었지만 올해는 1360만명에 그친다. 남·북한 차이는 동·서독 차이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남북이 합치면 덩치가 커져 극일(克日)의 발판이 된다는 밑그림을 내놓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실제 통일의 순간이 다가와 실행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의사 결정이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구호나 청사진으로 통일을 완수할 수는 없다. 좀 더 냉철하고 이성적인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맞아 메르켈 총리가 "완전한 동·서 통합에 5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