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은 연말연시 고정 풍경 중 하나다. 이탈리아는 연말연시 복권 열풍 최고봉에 선 나라다. 서기 1세기 로마 황제 네로가 공짜 복권을 발행해 민심을 끌어안은 얘기는 유명하다. 신문·방송은 복권 관련 뉴스를 마치 스포츠 실황 중계하듯 매일 보도한다. 한 장에 2유로 하는 특급 복권(superenalotto)이 곧 이탈리아 전국에 뿌려질 것이다. 1등은 1억유로(약 1277억원).

나폴리는 이탈리아 복권 열풍의 대표 주자다. 판매량이나 액수에서 전국 최고다. 나폴리 복권 풍경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폴리 사람들이 신앙처럼 받아들이는 해몽서(書) '스모르피아(smorfia)' 도표다. 숫자를 은유적 명사로 표현한 것이 스모르피아의 핵심이다. 등장하는 숫자는 1에서 90까지, 전부 90종류다. 숫자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가 새겨진다. 1은 이탈리아, 14는 술꾼, 18은 피, 23은 지진, 37은 성직자, 45는 와인, 54는 모자, 65는 통곡, 71은 엉망진창 남자, 84는 교회, 90은 공포다.

스모르피아 도표가 연말연시 복권 열풍과 무슨 관계에 있을까? 한국인이 그러하듯 나폴리 사람들도 '꿈=대박 전조'로 풀이한다. '교회에서 우는 술 취한 남자' 꿈을 꿀 경우, 스모르피아 해몽에 따라 84 65 14라는 숫자를 얻게 된다. 당연히 해몽에 따른 숫자의 복권을 찾게 된다. 굳이 복권이 아니더라도 평소 일상사를 스모르피아로 연결하는 곳이 나폴리다.

연말연시 나폴리에 가면 '반드시' 복권을 산다. 대박 운과 무관하지만 스모르피아 도표가 가진 형이상학적 '메타포(metaphor·은유)'를 믿기 때문이다. 숫자 1에서 90 속에 드리운 메타포 명사가 마치 '인생 조감도'로 느껴진다. 삶 죽음 사랑 신 질투 병과 같은, 인생 전반이 스모르피아 메타포에 배어 있다. 숫자를 나이로 보면서 명사 속 의미를 풀어보자. 18세 피=청년기의 격정, 37세 성직자=종교와 삶에 대한 고민, 54세 모자=장년기의 탈모…. 인터넷에서 '나폴리 복권'을 찾으면 스모르피아도 함께 나타난다. 90이 마지막이지만, 대박 운만이 아니라 인생이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