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2025년부터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일괄 폐지를 발표하면서 2조2000억원 규모의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내놨다. 총 16개 항목에 달하는 종합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12개는 이미 추진하고 있거나, 추진 예정이라고 발표했던 것들이라 졸속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대책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교실에서는 불가능한 대책인데 교육부 책상 위에서는 가능한 모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인공지능(AI) 교육 연수는 학교당 0.5명

교육부가 밝힌 일반고 지원은 내년부터 2024년까지 일반고 1555곳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일반고 업그레이드 대책'이다. 이번에 발표한 대책 중에는 초·중·고교 전체에 해당하는 것을 '일반고 대책'으로 내세운 것도 있다.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의 자사고·외고 폐지 정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7일 "2025년 3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대학원에 AI(인공지능) 융합교육 전공 과정을 신설해 초·중·고 교사들을 매년 1000명씩 총 5000명 연수시킨다는 내용이다. 2024년까지 5년간 총 32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계획대로 5년 후 5000명이 배출돼도 전국 초·중·일반고 1만806곳의 절반에 그친다. AI 융합교육 연수를 받는 교사가 학교당 0.5명에 불과한 셈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일반고 학생들의 교육 향상과는 무관한 대책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교육부는 일반고의 모든 교실로 무선망을 확대하는 데에는 22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학교 무선망 구축은 지난 2013년에도 농산어촌 교육 여건을 개선하겠다며 교육부가 300개 학교에 도입했었다. 학교에 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가 갖춰져 있고 교사가 이를 활용해 수업을 하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정책이다.

일반고 교사들은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는 "지금도 각종 교사 연수들이 쏟아지는데 정책 추진을 위해 형식에 치우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부가 발표한 정책들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6개 대책 가운데 12개는 '재탕'

교육부는 2023년까지 '학교 공간 혁신' 사업에 총 8723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학생 수가 줄면서 남는 교실을 공연장이나 공작실 등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과, 학생들이 교과목별로 마련된 교실을 찾아 이동하면서 수업하는 교과교실제를 위한 사업 등이 포함된다. 두 가지 모두 각 시·도교육청이 몇 년 전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해오던 사업이다. 특히 교과교실제는 교육부가 2010년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6년 전인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에도 포함돼 있었던 내용이다.

고교 학점제는 학생들의 교과 선택을 다양하게 하는 취지가 있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고교 학점제와 일반고 강화를 연계하며 교육과정 다양화를 강조했다. 올해 247과목을 운영하는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2024년 1000과목까지 늘리는 데 304억원을 쓰겠다고 했다. 쌍방향 실시간 화상 수업을 통해 수업을 듣는 것인데 교육부는 이미 지난해 이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운영해오고 있었다.

이재완 서울 대진고 교사는 "교사들이 정부의 일반고 대책을 언급조차 안 할 정도로 관심도 떨어진다"고 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발표한 일반고 대책들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구문이다"며 "교사들 연수시키고, 학교시설 지원하고,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것은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일반고를 더 좋아하게 됐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