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유럽 국가에 "개방 확대는 中 의지…협력 영역 넓히자"
불황 빠진 유럽, 실용주의 급부상…프랑스·독일은 中과 경제협력 약속
'브렉시트 혼란' 英, 존슨 총리 이후 中과 손잡을 가능성 커져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이어가면서 보호무역주의를 확산시키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에서 입장을 바꿔 혼자만 빠진다고 선언하는 등 골칫덩어리가 되자 유럽의 태도가 달라졌다.

일관성 없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대하기보다 개혁 개방 확대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중국과 경제 협력을 맺는 것이다. 불황 가능성이 커진 독일과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프랑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내부 혼란이 가중된 영국까지 줄줄이 ‘실용주의 노선’을 앞세워 중국과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고 있다.

시진핑(우)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좌)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6일 무역과 금융, 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는 올해 중국과 550억 달러(63조8440억원) 규모의 경제 협력을 체결했다. 6일(현지 시각) AP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중국 국제수입박람회에 맞춰 중국 베이징을 국빈 방문하고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나 무역·금융·농업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프랑스 방문 때도 400억 달러(46조4360억원) 규모의 경제 협력을 체결했다. 이번에 양국이 체결한 경제협력 규모는 150억 달러(17조4135억원)다.
AP통신은 "프랑스 대통령이 기후변화나 무역분쟁 등의 문제 해결책을 찾고 싶다면 이제는 워싱턴(미국)을 찾지 않고 베이징(중국)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협력으로 중국은 프랑스산 농축산물을 대거 사들인다. 오리와 거위 등 가금류 수입을 확대하고 프랑스산 돼지도 대규모 구입한다. 두나라 사이의 에너지 기업 간 협력도 늘어난다. 중국 베이징가스와 프랑스 엔지가 함께 톈진에 가스 하역 터미널과 저장시설을 조성한다. 중국 쉐너지와 프랑스 토탈은 중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소매 판매를 하는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항공산업 부문에선 중국이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로부터 A350 기종을 대량 구매하기로 했다. 금융 분야 협력도 강화된다. 중국 정부는 최근 프랑스에서 유로화 표시 채권 총 40억유로어치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 중국과 프랑스, 중국과 유럽연합(EU) 간 금융 협력을 심화하는 중요한 조치로 풀이된다.

앙겔라 메르켈(좌측 가운데) 독일 총리와 시진핑(우측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월 6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위해 마주 앉아 있다.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진 독일도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지난 9월 시진핑 주석을 만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국과 자율주행, 정보기술(IT) 서비스 영역 등에서 경제 협력을 약속하고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독일에도 부정적 영향을 가지고 온다"며 "독일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정신에 따라 국제 문제에서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역시 이날 회담에서 "중국과 독일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수호하고 개방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시장 개방 의지와 외국 자본을 환영하는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브렉시트’ 혼란에 빠진 영국의 경우, 보리스 존슨 총리 집권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과 미국은 전략적 동맹 관계이긴 하지만, 중국과는 더 강력한 경제 파트너로서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에 대해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빠르게 줄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해외직접투자(FDI) 동향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미국에 대한 FDI는 12억달러(1조4000억원)에 그쳤다. 중국 투자가 정점을 기록한 지난 2016년 상반기(160억달러·18조5600억원)와 비교하면 13분의 1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