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집수리 건축가

일산 신도시에 살던 시절이었다. 시를 쓰는 친구가 놀러 와선 멀리 보이는 열병합 발전소를 가리키며 "저 집 내가 지은 거야"라고 말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는 시를 짓지,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었고 설계를 전공하거나 목수처럼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그 건물을 지을 당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잠시 벽돌을 나른 것이 "내가 지은 거야"라고 말한 근거의 전부였다.

사실 그 말은 건축업에 종사하는 내내 들은 소리다. 집주인은 당연했고, 집을 설계한 건축가도, 집을 지은 시공자도, 짓는 것을 감독한 감리자도, 허가를 내준 공무원도, 그리고 지게차 운전사도 그렇게 말한다. 심지어 우리 회사 인턴 직원도 자신이 참여한 집수리의 오픈하우스에 부모님을 초대하여 "엄마, 이 집 내가 지은 거야"라고 (나직이) 말했다.

건축판에서 흔한 말 중 또 하나는 시공자에겐 "돈을 주니까 했으면서 무슨" 설계자에겐 "그림만 그렸으면서 무슨" 감독자에겐 "말로만 했으면서 무슨" 공무원에겐 "도장만 찍어놓고 무슨"이란 평가다. 마치 혼자서 집을 지은 듯하거나 혹은 상대를 폄하함으로써 자신의 공적을 암시하려는 것인데 화법만 다를 뿐 내용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집을 지은 이가 이토록 여럿일 땐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내가 볼 때 모두가 맞거나 혹은 모두가 틀리다. 건축가의 설계, 집주인의 자본과 의지, 시공자의 기술, 감독자의 잔소리 그리고 지게차의 동력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집 짓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혼자 지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짓다'의 주체는 기여도가 높은 누군가가 아니라 짓는 데 참여한 모두를 칭한다는 것이다.

그래, 언젠가 인턴을 만나면 (나직이) 말해줘야겠다. "이 집은 네가 지은 거야"라고. 인부들로부터 점심 메뉴를 주문받고, 현장 방문객에게 길을 안내하는 일도 이 집에서 꼭 필요한 몫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