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한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명예교수·前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주 52시간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한 후에도 여전히 이해 당사자와 노사 간 갈등,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에 맞는 삶의 질 보장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4차산업 혁명(IDX·Intelligent Digital Transformation) 시대에 진입했다. 지구가 급속하게 디지털 행성으로 진화하는 4차산업 시대에는 연구자, 교육자, 공무원, 금융업 종사자 모두 상상과 도전, 혁신으로 무장하고 변신해야 한다. 모바일과 인공지능, IoT 빅데이터가 만들어 내고 있는 새 비즈니스 생태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발전하고 있다. 이럴 땐 풍부한 상상력과 빠른 도전, 실패를 허용하는 연구 환경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종 구분 없는 주 52시간제라는 틀은 미래의 가능성을 감옥에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에 제약을 받는 연구자의 두뇌에서 상상력과 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주 52시간제는 연구자의 연구 실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주 52시간제 때문에 오후 5시면 불 꺼지는 삼성 R&D센터 기사를 읽고, 금요일 오후 6시면 실험실이 닫히는 정부 출연 연구소 실험실과 기타 기업 연구소 등을 생각하니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진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에 만족감이 크다. 그들은 연구실과 연구 실험 시간이 노동이라기보다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며 최고의 일터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연구와 실험은 시간 제약을 초월한다.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생을 바치며 꿈을 키우게 근무시간 자율성을 제공해야 한다. 장병규 대통령 직속 4차산업위원장이 발표한 "인재는 시간이 아닌 성과로 평가받고 도전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 보고서를 실천에 옮기도록 권고하고 싶다.

올해도 이웃 일본은 노벨 과학상 한 명을 추가해 총 24명을 배출했다. 2019년 현재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미국 286명, 영국 95명, 독일 90명, 러시아 18명, 타이완 4명, 중국 2명으로 국가 간에 큰 차이가 난다. 연구 환경이 자유로운 국가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은 압도적이다. 기초과학 강국 일본의 대학 연구실 한 단면을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과학의 기초와 원리를 중시하고 도제식 수직적 연구 연계성이 강한 일본의 대학 실험실은 토·일요일을 포함해 연중 무휴 하루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다. 도쿄대 혼고 캠퍼스에서는 24시간 운영 편의점이 두 곳이나 성업 중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6명을 배출한 지방 국립 나고야 대학 연구 실험실은 교수와 대학원생이 도시락을 같이 먹으면서 연구 토론을 한다.

기초과학의 싱크탱크인 대학의 교육과정 개혁과 대학 자율 확대, 획기적인 정부 재정 지원 등 교육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정부 출연 연구소와 기업 연구소, 대학의 연구자가 마음껏 실험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연구자는 24시간 연구 실험실을 지키길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