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한국을 괴롭히는 뿌연 미세 먼지가 올해도 또 슬금슬금 서울을 덮고 있다.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나는 '내가 사는 도시의 공기가 좀 더 깨끗했으면…' 하고 여러 해 동안 바랐다. 각종 대책이 때 되면 쏟아지지만 공기가 좋아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런던 초저공해지구 설계자인 프랭크 켈리(왼쪽)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와 김지윤 탐험대원.

반면 '뿌연 공기'의 상징이었던 런던이 이제 꽤 맑은 공기를 자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런던은 1952년 나흘 동안 지속된 스모그(매연과 안개가 섞인 것) 사태로 1만2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후 런던은 건강한 공기에 도시의 사활을 걸었다. 최근 찾은 런던은 공기가 참 깨끗했다. 글로벌 대기오염 조사기관인 에어비주얼이 공개한 '2018 세계 대기 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런던의 초미세 먼지(입자 크기 2.5μm 이하) 농도는 연평균 12.0㎍/㎥로 '공기 질이 좋은 수준'이었다. 매년 개선돼 1990년대 초 20㎍/㎥의 절반 수준으로 초미세 먼지가 줄었다. 서울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 최근 몇 년간 초미세 먼지가 악화했다. 2018년 서울의 초미세 먼지 농도는 연평균 23.3㎍/㎥로 런던의 두 배쯤 나빴다.

런던은 어떻게 공기를 맑게 씻어냈을까. 런던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교통수단, 즉 자동차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최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도 배기가스를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런던의 노력은 더 민첩하고 과격해 보였다. 이들은 통제하기 쉬운 대중교통부터 '칼'을 댔다. '권고'가 아닌 '강제' 수준이다. 예컨대 2018년 이후 새로 등록하는 모든 택시는 전기차 등 무공해차여야 한다. 전체 택시 2만1000대 중 1700대(8%)가 이미 전기차다. 런던 시내 곳곳에선 전기 플러그 같은 그림을 붙인 전기차 택시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서울은 전기차 택시가 전체 7만2000대 중 150대(0.2%, 7월 기준)뿐이다. 런던은 2033년까지 택시와 우버 등 승차 공유 차량을 모두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사디크 칸 시장은 이를 위해 전기차 택시에 가장 핵심적인 급속 충전소(30분 내 충전 완료)를 175개 추가로 설치하겠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서울 목표는 2025년까지 전체 택시의 55% 정도를 전기차로 교체하겠단 수준이다.

전기차 택시, 런던 1700대 서울 150대 - 영국 런던은 전체 택시 2만1000대 중 1700대가 전기차다. 반면 서울은 전체 택시 7만2000대 중 150대뿐이다. 전기차에 필수인 급속 충전소 역시 런던은 200여개지만 서울은 70여개에 불과하다.

런던은 또 세계 최초의 '초(超)저공해 지구(ULEZ·Ultra Low Emission Zone)'를 런던 중심에 지난 4월 지정했다. ULEZ 발동으로 유럽연합(EU)의 매우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기준을 충족한 차만 런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다. ULEZ 벌금은 현재 200파운드(약 30만원)이고 내년부터 300파운드(약 45만원)로 더 늘어난다. 서울 노후 경유차 운행 위반 과태료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서울시는 미세 먼지가 악화했다며 지난해 사흘 동안 '대중교통 무료'에 150억원을 썼다. 런던시는 일회성이 아닌, 실용적인 장기 계획에 예산을 알뜰히 투입하는 모습이었다. '런던시 맑은 공기 기금(Clean Air Fund)'은 10년에 걸쳐 2200만파운드(약 332억원)를 써서 공기 질을 더 개선하겠다는 계획인데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이 많았다. 공유 자전거를 배포하고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에 차를 막는 특별 존을 만들고, 공기가 가장 맑은 경로를 알려주는 (민간) 앱 개발자를 지원하는 식이다.

런던시 지원을 받는 앱 '공기 깨끗한 길 찾기(Clean Air Route Finder)'를 런던에서 써봤다. 런던 빅토리아역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가는 길을 검색했다. 빨간·초록길 두 가지 경로가 떴다. 큰길로 가는 빨간길은 15분, 골목 사이로 돌아가는 초록길은 20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대신 대기오염도는 빨간길보다 23% 낮다는 표시가 함께 보였다. 꽤 유용했다.

한국 환경부는 내년 한 해에만 2조2000억원이란 거금을 미세 먼지 절감을 위해 투입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큰돈이 부디 똑똑하게 쓰였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마스크 없이 거리를 걸어 다닐 날이 오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