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에서 창업한 김모(26)씨의 유통회사는 서류상 임직원이 4명이다. 대표인 김씨와 부대표 A씨, 디자이너 B씨, 개발자 C씨로 구성된다. 각각의 통장으로 월급도 들어간다. 실제 출근하는 사람은 김씨와 부대표 A씨뿐이다. 김씨의 오랜 동네 친구인 B씨와 C씨는 이 회사에 출근하지는 않는다. 김씨는 "창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직원이 셋이나 필요하겠느냐"며 "정부가 팀 창업에 가점을 부여한다고 해 친구의 이름을 팀원으로 넣은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민간의 창업 활동을 국고(國庫) 지원하는 과정에서 '단신 창업'이 아닌 '팀 창업'을 우대하는 제도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려는 취지에서다. 그러자 현장에서는 기대했던 일자리 창출 대신 '유령 고용'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실제로 김씨 회사 역시 이 '유령 직원' 두 사람 덕에 올해 4월 정부의 '예비창업패키지' 사업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팀 단위 창업으로 100점 만점의 선정 평가에서 2점을 가점(加點)으로 받았다.

정부 관계자는 "가점이 있으면 심사위원들 눈길이 더 가기 마련"이라고 했다. 김씨 회사는 B씨와 C씨에 대한 인건비 지원금 1700만원을 포함, 총 4000여만원을 '창업 지원금' 명목으로 나라에서 받는다. 김씨 회사 직원이 5명으로 늘면 정부의 지원이 끝날 때 받는 최종 점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게 된다. 예비 창업가들 사이에선 "유령 직원을 고용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창업진흥원은 창업 예비 단계에서부터 활성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영한다. 그 첫 단계가 '예비창업패키지'다. 업종과 무관하게 처음 창업을 준비하는 만 39세 이하 청년층이 대상이다. 총 1700명에게 총 1010억원을 지원한다. 1명이 최대 1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팀 단위 창업을 하면 100점 만점의 선정 평가에서 2점 가점을 받는다. '창업아이템 관련 특허권 보유자'나 '전국 규모 창업경진대회 수상자' 가점(모두 1점)보다 팀 창업 가점이 더 높다. 조건은 '지원금 지급 협약 체결 후 3개월 이내에 팀원을 모두 채용해 직원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팀 창업에 주는 혜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이 끝난 뒤 최종 점검에선 5인 이상 고용 사업장에 가산점을 부여해 '최우수' 등급을 부여한다. 보통, 우수, 최우수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인 최우수 등급을 받은 창업가는 정부의 다음 단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초기창업패키지' 대상자 선정에서도 우대된다.

이 때문에 예비 창업가들 사이에선 '유령직원' 고용이 유행한다. 작년 정부의 창업지원사업으로 스마트폰 앱 서비스를 개발한 김모(29)씨는 "혼자 해도 충분하지만, 여러 명이 하면 정부가 돈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했다. 역시 예비창업패키지 사업에 선정된 한 온라인 중개업종 A 회사에선 대표의 친척을 팀원으로 '서류상 고용'했다. 해당 사업자는 "그 돈으로 회식해도 모른다"고 했다.

대학생 강모씨는 대학교 경영학회에서 만난 친구 4명과 함께 IT 업종 창업 계획을 정부에 제출, 올해 7월 예비창업패키지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인건비 2000만원을 포함해 총 3800만원을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강씨 창업회사는 아이디어만 낸 뒤 1개월여 만에 사실상 해산했고, 지금은 팀원 전원(全員)이 다른 회사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심지어 계획서 제출 당시 회사 대표를 맡았던 강씨의 친구는 이미 다른 회사에 취업해 지금은 '투잡'(two job)을 뛰는 상태다.

강씨는 창업진흥원의 최종 점검 과정에서는 직접 만든 '시제품'을 확인시켜줘야 지원금을 회수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제품 제작 과정은 돈을 주고 외주를 맡겼다. 강씨는 "지금부터 들어오는 지원금은 사실상 우리 용돈"이라고 했다.

유령 직원을 고용하는 일은 간단하다. 4대 보험 가입 확인서와 근로계약서, 이력서 등의 서류만 구비하고, 매달 급여대장과 출근부만 제출하면 된다. 실제 시제품을 제작하고 각종 증빙서류를 첨부해야 하는 재료비, 외주 용역비보다 쉽다. '팀원 회의' 등으로 가짜로 출근부만 쓰면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40세 이상 중장년 창업자'를 위한 지원금 총액 318억원 규모 '예비창업패키지' 사업을 올해 8월 새롭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1인당 최대 1억원을 지원한다.

추경호(자유한국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청년 일자리 지원 예산 집행 현황'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창업지원을 포함한 청년 일자리 지원 예산으로 총 8조2265억원을 사용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청년 고용률은 43.7%, 청년 실업률은 7.3%다. 정부는 "청년 취업자가 늘어나고 고용시장이 뚜렷한 회복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