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조사에 육군 중령이 출석해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고 한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파견 근무 중인 빈드먼 중령은 군 정복을 입고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국익과 안보를 해치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통화를 직접 청취했던 빈드먼 중령은 앞서 NSC 상급자에게 통화의 심각성을 두 차례나 보고했었다고 한다.

우리 현실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선거 득표용 '김정은 쇼'에만 목을 매는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국익을 해치고 나라의 안위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군 관계자들이 직을 걸고 그런 소신을 밝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군 최고 관계자가 "6·25가 북의 전쟁범죄냐" 질문에 눈치를 보며 답을 못 하거나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이해할 부분이 있다"는 이적(利敵) 행위와 같은 답변을 하는 장면들만 목격했을 뿐이다.

북핵이 폐기는커녕 기정사실화되고 있는데 우리 군이 이를 막을 수 있나. 그런데 어떻게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나. 미군 없이는 북핵 미사일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요격도 못 하는데 어떻게 전쟁 지휘를 하나. 무슨 수단으로 북핵으로부터 국민을 지킨다는 건가. 그런데도 이렇게 직언하는 군인이 단 한 사람 없다. 군복만 입었지 군인이 아니다.

군인이 진급에 목을 걸고, 군 인사권이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빈드먼 중령은 의회 출석 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백악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가 휘장을 단 남색 정복 차림으로 의회 소환에 응한 것은 "내가 충성하는 대상은 트럼프라는 개인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 군인들은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나.

빈드먼 중령뿐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현직 관료들이 야당이 주도하는 탄핵 조사에서 줄줄이 소신 증언에 나서고 있다. 주러시아 대사로 지명된 국무부 부장관은 인사 청문회에서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가 우크라이나 압박에 관여했다면서 대통령이 자기 직위를 이용해 정적(政敵)에 대한 수사를 외국에 요청하는 것은 "미국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35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인 현 국무장관의 최측근 참모는 백악관이 청문회 증언을 막으려 하자 사표를 내고 의회에 출석했다.

이런 정통 군·관료들 덕분에 공적(公的)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는 트럼프의 즉흥적인 국정 운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시스템이 그나마 버티는 것이다. 우리 경제·산업 정책 관료들은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 엉터리 근거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스스로 내다 버리는 탈(脫)원전 자해에 대해 직언 비슷한 것을 꺼내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자리 하나 얻고 승진하겠다고 궤변으로 감싸고돌기 바쁘다. 나라 경제가 타격을 받고, 국민 부담이 늘어나고, 자신의 관료적 양심이 파탄 나도 제 자리 보전만 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그런 대한민국 군·관료 덕분에 5년 왔다 가는 정권의 임기 절반도 안 돼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꼴을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