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 사기극과 그 공범들." 일주일 전인 24일 이런 제목의 책 한 권이 서점에 깔렸다. 지난 3월 소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고 주장하며 주목받았던 윤지오씨를 겨냥한 책이었다. 윤씨는 자신이 고(故) 장자연씨의 생전 동료였기 때문에 사건의 진실을 잘 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밝히지 않았고, 앞뒤가 안 맞는 얘기도 많아서 진위 논란이 뜨거웠다. 게다가 윤씨는 신변 위협을 받는다며 후원금 1억4000만원을 모은 뒤 캐나다로 출국해 버렸다. 그 행태에 분노한 이들이 윤씨를 사기범으로 고소했다. 이런 판국이니 윤씨를 비판하는 책의 출간이 신기한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책의 저자가 신기했다. 시사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단국대 의대 서민(52) 교수였다. 필봉(筆鋒)이 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겨냥했기에 편 가르기 좋아하는 이들은 서 교수를 '진보 논객'으로 분류했다. 그 진보 논객이 윤씨가 사기꾼이라고 주장하고, 그걸 입증하는 책까지 낸 것이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필두로 진보 진영 다수는 한때 윤씨를 영웅처럼 떠받들었다. 서 교수가 최근 몇 달간 쓴 칼럼 제목도 심상치 않았다. "조국(전 법무부 장관)이 두려워지는 이유" "그래, 나 친일파다" "손혜원 의원이 한국당 소속이었다면" 등등. 진보 진영의 위선에 실망한 논객의 전향일까. 책이 나온 다음 날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서 교수에게 물었다.

―윤씨가 왜 사기꾼인지에 대한 꼼꼼한 논증이었다. 왜 이런 책을 낸 건가.

"아무도 안 낼 것 같아서(웃음). 내가 보기에 윤씨는 정말 '투명한' 사기꾼인데, 대다수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 이야길 제대로 못 하거나 침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라도 나서야겠단 생각에 직접 이 책 기획서랑 시놉시스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찾았다. 그런데 번번이 퇴짜를 놓더라. 이래 봬도 나름 출판업계에선 베스트셀러 저자로 통하는 사람인데도 그러더라. 한 출판사가 '용감하게' 나서 준 덕분에 겨우 책이 나왔다."

―예전부터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관심이 있었나.

"전혀 아니다. 막연히 장자연씨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조선일보가 가해자라고 단정한 사람 중 하나였지. 처음에는 윤씨를 '큰 용기를 낸 대단한 젊은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생각이 바뀐 계기는.

"윤씨의 조언자였던 김수민 작가가 그의 실체를 폭로한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글만 읽어도 윤씨가 사기꾼이란 걸 알 수 있다. 그 뒤로 본격적으로 윤씨에 관한 여러 기사와 자료를 찾아 읽어보면서 공부해보니 이건 뭐(웃음). 이렇게나 허술한 사기꾼에게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놀아날 수 있나 싶더라."

기생충학자이자 시사 칼럼니스트인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가 고(故) 장자연씨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 자처했던 윤지오씨를 비판하는 책을 냈다. 서 교수는 “사기꾼에 불과한 윤씨가 영웅 대접을 받은 일은 진영 논리의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왜 그런 사기극이 통했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진영 논리 때문이다. 진실이 아니라 우리 편이 중요하다는 논리가 사고를 마비시키는 거다. 윤씨가 낸 책 '13번째 증언'은 '13번째 구라(거짓말)'일 뿐이다. 그 '구라'를 무턱대고 믿는 건 윤지오는 우리 편이고 그 적수는 '때려잡아야 할 조선일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논리 안에서 우리 편은 틀릴 수가 없다. 나도 조선일보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 게 많은 사람이지만, 이 사건에 관해서는 조선일보가 피해자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곧바로 적폐로 몰린다. 진영 논리 때문에 점점 어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진영 논리를 비판하는 칼럼을 많이 쓰고 있다. 손혜원 의원 문제나 일본과 무역 분쟁이 벌어졌을 때도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고, 최근 조국 전 장관 비판 칼럼은 세 번이나 썼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인데 무리한 거다. 그런데 윤지오 사건도 두 번 썼다(웃음). 사실 나 이번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사람이다. 그런데 점점 실망이 커졌다. 저쪽을 적폐로 몰고 집권한 정부면 뭐 하나라도 나은 게 있어야 하는데, 하는 걸 보면 그런 게 없더라. 경제고 외교고 다 엉망이지 않은가. 일본과 갈등도 그렇고, 조국 사태가 그 절정이었다. 정권뿐 아니라 조국을 수호하겠다고 나선 지지자들이 더 문제였다. 그 맹목적인 지지가 진실을 가리게 되니까. 그동안은 (이 정권과 지지자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비판하기로 했다."

―왜 그런 진영 논리에 빠졌다고 보는가.

"크게 두 가지 이유 같다. 하나는 지금 여권이 집권을 했는데도 여전히 스스로를 소수고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반대편에 있는 다수파 기득권을 끌어내리기 위해선 우리 편이 좀 잘못을 해도 눈 감고 똘똘 뭉쳐야 한다는 거다."

―또 하나는?

"이건 나만의 가설인데…. 2011년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대히트한 후에 그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안을 두고 팩트에 기반해 생각하고 결론 내리는 대신 일종의 '나꼼수'식 음모론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기득권의 거대한 음모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그에 반하는 증거는 모두 그 음모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란 식이다."

―요즘 '그쪽 사람들' 비판을 많이 해서 악플도 많이 달리고 공격도 많이 받는 것 같더라. 섭섭할 거 같은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멘털은 좀 강하다. 악플 중에 외모 공격도 많은데, 사실 뭐(웃음). 나도 인정한다. 외모를 공격하는 악플에 직접 '저도 거울 보면서 놀랍니다'라고 댓글도 단다. 사실이니까."

―주위에서 전향한 거냐고 묻지는 않나.

"날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소위 '문빠'들이 의심하고 있지. 2006년쯤 '차라리 박근혜가 어떨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나도 까먹고 있던 글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 정치인이라서 나름 의미가 있다는 내용이다. 요즘 문빠들이 그걸 찾아내서 '봐라, 서민은 박사모였다'고 공격하는 주제로 쓰고 있다. 잘 읽어보면 비판하는 글인데. 제목만 읽고 결론까지 내려버리는 거다."

―특히 '문빠'에 비판적인 것 같다.

"난 어떤 의미에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보다 '문빠'가 훨씬 우리 사회에 해롭다고 본다. 박사모는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휘두르며 자기주장을 하는 분들일 뿐이다. 하지만 문빠들은 여론 조작을 한다. 포털 사이트나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댓글로 여론몰이를 하고 다닌다."

―스스로는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나.

"나라고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최소한 진영 논리를 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진영 논리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어떤 뉴스가 자기가 속한 진영 논리에 맞으면 진위를 확인할 생각 자체를 안 한다. 최근 지인 한 명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문재인 대통령 탄핵에 동참했다'고 하길래 깜짝 놀라서 기사가 났냐고 물어보니 링크를 하나 보내주더라. 읽어보니 3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기사인데 제목에 '정의구현 사제단 대통령 탄핵 지지'라고 달린 것만 본 거다. 가짜 뉴스가 이런 식으로 퍼지는 거구나 싶었다."

―이번 책으로 진영 논리가 조금이나마 극복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웃음). 다만, 내 목적은 하나다. 윤지오 사건이 이대로 잊혀선 안 된다는 거다. 다시 이슈화해야 한다. 윤씨를 캐나다에서 잡아와서 법정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공범들, 특히 윤씨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보도한 언론들도 사과했으면 좋겠다. 오보는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오보를 냈으면 사과를 해야 하지 않나. 왜 자신들의 과오에는 침묵하는가."

서 교수는 책을 낸 후 언론사 3곳에 책을 보냈다고 했다. 윤씨의 주장을 별 검증 없이 내보냈던 JTBC와 CBS, 그리고 윤씨의 주장을 끝까지 검증하고 의문을 제기했던 SBS라고 했다. 감사 인사는 SBS에 보낸 책에만 적었다고 한다.

진중권·김경율 vs 유시민·공지영… "진보분열 아닌 상식 대 비상식 대결일 뿐"

서민 "柳, 더는 진보로 보기 힘들어"

윤지오 사건뿐 아니라 서민 교수가 칼럼을 통해 비판했던 손혜원 의원의 투기 논란, 일본과의 무역 분쟁,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등은 모두 극에 달한 우리 사회의 진영 논리를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소위 '문빠'로 불리는 극렬 지지층은 손 의원을 옹호하고 반일 불매 운동을 주도하며 조 전 장관이 언론과 검찰의 희생양이 됐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일부는 그런 '문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다가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 진보 논객이자 정의당 당원이기도 한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정의당이 조 전 장관에 대해 부적격자라고 판정 내리지 않은 것에 항의해 탈당계를 제출했다. 참여연대 김경율 전 공동집행위원장,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 김규항 작가 등 진보 인사들도 조 전 장관 사태 당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반대로 유시민 노무현 재단이사장이나 소설가 이외수·공지영씨 등은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여론을 주도하는 등 진보 진영이 분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서 교수는 "진보 진영의 분열이 아니라 상식 대 비상식으로 나뉜 것일 뿐"이라며 "조 전 장관 사태처럼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옹호하는 유 이사장 같은 사람을 더 이상 진보 인사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