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9일 우리 측이 전날 제안한 금강산 관광 관련 실무협상을 거부했다. 우리 정부는 금강산 내 '남측 시설 철거'를 일방 통보한 북한에 '금강산 지구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논의하자고 했지만 하루 만에 퇴짜를 맞았다. 정부·여당에서는 이날 북측의 '거절 통보' 직전까지도 관광 재개를 운운하며 북한 눈치를 보는 듯한 발언이 이어졌다.

앞서 북한은 지난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리 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틀 뒤엔 "(철거 문제를) 문서 교환 방식으로 합의하자"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북의 '상종 거부' 통보에 정부는 "당국 간 만남이 필요하다"며 지난 28일 실무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 통지문에서 '별도의 실무회담을 가질 필요 없이 (철거 문제만) 문서 교환 방식으로 합의하자'고 했다. 북은 우리 정부가 제안한 '새로운 발전 방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통일부가 공개한 금강산 남측 노후 시설들 - 북한이 금강산 내 '남측 시설 철거' 방침을 통보한 상황에서 통일부가 29일 공개한 사진들. 2004년 개관한 12층짜리 금강산호텔 전경(왼쪽), 외금강호텔 천장이 낡아 부서진 모습(가운데), 2008년 완공된 이산가족면회소 내부에 곰팡이가 핀 모습(오른쪽) 등이 담겼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김정은의 말에 토를 달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를 만나 대화할 생각 자체가 없다"고 했다. 북측은 애초부터 남북 경협 방식의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염두에 둔 우리 정부의 제안을 고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기류에도 정부는 지난 며칠간 '금강산 불씨 살리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부 장관은 '금강산 개별 관광' 가능성을 띄웠고, 통일부는 "창의적 해법"을 찾겠다며 안보리 제재를 우회할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정부·여당의 '북한 달래기'는 이날 북한 통지문이 오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금강산 관광 중단을 부른 박왕자씨 피격(2008년 7월)에 대해 "10여년이 지난 상황에서 진상 규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이야기들이 나온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북한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철거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통일부는 이날 금강산 내 우리 시설들의 노후함을 강조해 보여주는 사진 20여 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오전 11시 무렵 북측의 통지문을 받은 정부는 오후 4시가 돼서야 이를 공개했다. 관계 부처 간 긴급회의를 가졌지만 북을 설득할 묘안은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측은 (한국이 말하는) '창의적 해법'이 자기들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고 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의 대남(對南) 불신이 깊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다시 대면 실무회담을 요구하는 것을 포함해 다각도로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직 통일부 관리는 "실무회담을 재차 제안했다가 거절당할 경우 정치적 부담과 역풍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최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18차 비동맹운동(NAM) 회의 연설에서 남측에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 앞에 책임을 다하라"고 했고, 미국에는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