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아르헨티나에 또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섰다. 27일 대선에서 긴축과 개혁을 추진했던 현 대통령이 패하고,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 등을 공약한 좌파 후보가 당선됐다. IMF의 재정 긴축 요구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가 부도에 몰리는데도 포퓰리즘 정권을 선택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선거는 복지의 단물에 맛 들린 국민이 중독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4년 전 아르헨티나 국민은 "포퓰리즘에서 나라를 해방하겠다"고 선언한 기업인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12년간 집권한 좌파 정권이 나라를 거덜낸 뒤였다. 각종 보조금과 무상 복지를 줄이고 정부 부처를 절반으로 통폐합하는 등 긴축 개혁을 펼쳤다. 재정 파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다른 길이 없었다. 막상 고통스러운 개혁이 진행되자 국민은 인내하지 않았다.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공무원들은 반정부 시위대로 돌변했다.

아르헨티나 현대사는 포퓰리즘과 재정 위기의 악순환 역사다. 1946년 등장한 페론 정권의 임금 인상과 산업 국유화 정책은 국가 주도 복지 포퓰리즘의 시작이었다. 그 후 70년간 주로 좌파 정권이 집권하면서 나랏돈을 경제개발 대신 복지와 공짜 시리즈에 써버렸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세계 5대 부국(富國)으로 꼽히던 아르헨티나는 8차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졌고, 20여 차례나 IMF에 손을 벌렸다. 지금도 IMF 구제금융 없이는 파산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국민은 쓴 약 먹기를 거부한다.

이번 대선 당선자는 페론주의 신봉자다. 과거 그가 총리였던 좌파 정권은 전기·수도료에 보조금을 퍼붓고 청소년 360만명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등 곳곳에 세금을 살포했다. 연금 지급 대상을 두 배로 늘리고 학생에게 노트북을 무상 지급하는 등의 '공짜 시리즈'를 남발했다. 일자리를 주겠다며 공무원 수를 2배나 늘렸다. 이름만 걸어놓고 월급을 타가는 유령 공무원 급여로 매년 200억달러(약 23조원)가 새 나갈 정도다. 모자란 재원을 충당하려 돈을 마구 찍는 바람에 물가가 매년 30% 이상 치솟았다. 나랏빚은 외환보유액의 5배 규모로 부풀었다. 쉽게 말해 나라가 망한 것이다.

병든 나라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도 포퓰리즘 정치인이 나타나 병을 낫게 할 약 대신'설탕물을 주겠다'고 하자 당선됐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 정치의 포퓰리즘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쓴약 대신 설탕물을 주겠다'는 정치인이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국민이 그를 선택할지, 아닐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