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집수리 건축가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방을 서재로 만들려고 해요. 2.4m 크기의 책상을 놓아야 하는데 방이 코딱지만 해서. 서류 보관용 테이블과 자석이 붙는 게시판과 그리고…."

얼핏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이 없어 보였다. 방 크기에 비해 책상이 크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고 서류 보관함, 게시판은 시중에서 구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작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가 말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서두처럼 당사자 스스로 언어화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대상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므로 행동으로 옮겨도 될 수준인 반면 침묵으로 남긴 "…" 부분은 영화 '왕과 나'에서 율 브리너가 말하는 "기타 등등"처럼 분명히 존재하나 언어로 옮길 수는 없거나, 자신이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고려해야 할 그 무엇을 나를 통해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내 역할은 따옴표로 표시된 암호를 해독한 후 해법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집을 방문해 보니 문제가 보였다. 책상을 고려한 방의 크기도 중요했지만 방의 방향, 창과 문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창이란 빛과 바람이며, 문은 그 장소로의 출입구이므로 이 모두는 책상의 배치에 영향을 주게 마련인데 그는 창문을 대면하여 책상을 두려고 했다. 무난하긴 했으나 책상을 벽에 붙이면 한쪽 면만 사용할 수밖에 없어 폭이 깊은 책상의 장점을 살릴 수 없었다.

나는 양쪽에 남겨진 공간의 쓸모를 말하며 책상을 창문과 직교하여 방의 중간에 배치하자고 제안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 그러니까 창문으로 유입되는 햇볕으로 인해 오른쪽 팔의 그림자가 책상에 드리워진다는 점, 콘센트에서 책상까지 연결되는 전선의 노출, 천장의 가운데 있던 전등과 책상 위치와의 관계, 게시판을 부착할 벽이 곧지 않아서 발생하는 틈, 무엇보다 의자가 놓일 공간의 고립성에 대해 말했다. 3.6×3.1m의 방에서 존재할 "…"에 대한 독해였다. 너무 하잘것없나. 그러나 그것이 수리(修理)의 언어이자 내가 갖고 있는 해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