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중국 시장분석기관 후룬연구소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세계 유니콘 494개 중 206개를 보유해 미국(203개)을 처음 앞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발표는 업계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현재 중국 스타트업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사이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폭락하거나 사업을 접는 중국 스타트업이 속출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 여파로 해외로부터 중국 스타트업으로 가는 투자는 크게 줄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중국 스타트업이 올 2분기 투자받은 금액은 94억달러(약 11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413억달러)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 수도 2015년 487곳에서 올해 45곳으로 쪼그라들었다.

업계에서는 "중국 스타트업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투자업체 TD캐피털은 최근 "향후 5년 안에 중국 스타트업 대부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암울한 진단을 내놨고, 중국 자산운용사 차이나 에버브라이트도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90%는 2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 자금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며 성공 가도를 달려온 중국 스타트업에 비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돈줄 마르는 중국 스타트업

거품론은 최근 중국 스타트업 상당수가 실망스러운 실적을 보이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IT(정보기술) 기업 샤오미는 지난해 7월 상장 이후 1년 만에 주가가 반 토막 났다. 세계 최대 공유자전거 업체였던 오포는 수십억달러를 들여 해외 시장 확장에 나섰다가 파산 위기에 몰려 각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고 있다. 공유 차량 업체 디디추싱도 해외 시장 진출 실패 등으로 최근 상장을 연기했다. 중국 얼굴인식 기업 센스타임은 올해 초 20억달러 모금을 목표로 행사를 열었다가 투자자 반응이 저조하자 슬그머니 취소했다. 미국 액셀러레이터 플러그앤드플레이 중국 지사의 피터 슈 최고경영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들의 기업가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보다 2~3배 높게 책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결정타는 미국 정부의 무역 제재다. 미국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테크 기업들에 대한 기술·부품 수출을 막자 전 세계 벤터캐피털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중국 스타트업의 돈줄이 마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달 초 세계 최대 CCTV 제조회사인 하이크비전과 중국 AI 스타트업 4곳을 추가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중국 대표 유니콘인 바이트댄스는 올해 초 틱톡 앱을 통해 미국 청소년들의 개인 정보를 탈취한다는 의혹을 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57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중국 제조 2025' 차질 가능성

중국 스타트업의 위기는 중국의 경제 전망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장차 중국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테크 분야 기업들이 일찌감치 고꾸라지면서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2025년까지 반도체·전기차·로봇 등 10개 하이테크 제조업 분야를 세계 최강으로 키우겠다는 '중국 제조2025'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국과 달리 중국 정부와 기업은 버블 붕괴를 경험하지 않은 탓에 제대로 된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한때 1분당 8개의 스타트업을 배출하던 중국의 스타트업 붐도 저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 분쟁 여파로 중국으로 유입되던 전 세계 벤처 투자 자금이 그랩(싱가포르), 고젝(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스타트업계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데다 경제 둔화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중국 정부도 투자를 줄이고 있어 당분간 중국 스타트업의 고전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