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전통 상차림은 한 끼 식사에 먹는 음식은 한꺼번에 차려 내는 '한상차림'만 있다고 알았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서양처럼 본식(本食·메인 요리)에 앞서 '애피타이저' 즉 전식(前食)을 내오는 식사 형태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최초의 기록이 발견됐다.

기록을 남긴 이는 구한말 조선에 파견된 미국 해군 무관 조지 클레이튼 포크(Foulk).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초보 수준이지만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당시 거의 유일한 서양인이었고, 미 해군 장교이자 외교관으로서 자국 이익을 도모하되 조선의 주권이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신념은 근대화를 추진하던 고종(高宗)의 이해와 일치했다. 포크는 알렌·언더우드 등 교육·의료 분야에 근대적 시스템을 도운 인물들을 데려오는 일에 관여했고 최초의 전기 시설 설치, 최초의 근대 교육 시설 육영공원과 서양식 의료기관 제중원 설립, 서양 곡식·채소 종자와 농기구 수입 등 신문물 도입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포크의 활약에 고종과 개혁파는 기뻐했지만, 주변 강대국 특히 청나라 실력자 위안스카이(원세개)는 탐탁지 않아 했다. 이에 외교적 부담을 느낀 미국이 소환 명령을 내림으로써 포크는 파견된 지 4년 만인 1887년 조선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포크는 그동안 국내에서 잊히다시피 했으나 최근 포크가 남긴 조선 관련 기록들이 미국 여러 대학에서 발견되면서 포크와 그의 활동이 재조명·재평가되고 있다.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융합연구단 박채린 박사는 포크의 기록 중 음식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 조사했다. 구체적으로 포크가 1884년 충청·전라·경상도 등 삼남(三南) 지방을 여행했을 때 지방 관아 수령들에게 대접받은 음식을 분석했다. 박 박사는 그 결과를 지난 16~17일 열린 '한식 인문학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

구한말 미 해군 무관 조지 포크가 스케치한 익산군수 제공 오찬 전식(위)과 전라감사 제공 본상 상차림(아래). 포크는 상차림과 음식 배치를 그림으로 그리고 숫자까지 매겨가며 설명을 붙이는 등 꼼꼼하게 기록했다.

포크는 1884년 9월부터 10월 사이 보름간, 11월부터 12월 사이 40여일간 삼남 지방을 여행하면서 충청·전라 지역 관아에서 총 여섯 차례 식사 대접을 받았다. 고종과 당시 최고 실세였던 민영익의 총애를 받던 포크를 지방 수령들은 극진히 대접했다. 포크의 기록은 그 철저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는 끼니마다 나온 상차림과 음식의 배치를 그림으로 그리고 숫자까지 매겨가며 기록했다. 박채린 박사는 "포크가 남긴 기록은 정보 수집이라는 공무 수행을 목적으로 했기에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 철저히 사실적 서술에 집중한 것이 특징"이라며 "기물, 상차림 등은 직접 촬영한 사진 이미지 스케치를 남김으로써 실증을 가능케 한 유용한 기록물"이라고 평가했다.

포크의 기록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박 박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라감영 연회 단 한 차례를 제외한 다섯 번의 접대에서 모두 본식에 앞서 전식이 제공됐다는 점이다. 이를 포크는 'Preliminary Pap'이라고 기록했다. 간식이 아닌 본격적으로 밥 먹기 전 나오는 예비 상차림으로 분명하게 인식했다. 전식은 꿀·감·배 등만으로 간단하게 나오기도 했지만, 본식 뺨치게 거창하게 차려지기도 했다. 익산군수가 점심 본식에 앞서 낸 전식의 경우 고기 고명을 올린 골동면과 함께 간전, 돼지고기, 김치, 밤, 고구마, 떡 등 12가지나 되는 음식이 나왔다. 포크는 전식과 본식 사이에 한 시간 정도 격차가 있다고 기록했다. 박 박사는 "전식을 먹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본다면 전식을 마친 후 적어도 30분 내에 본식이 제공되었다고 예측할 수 있다"며 "전식과 본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코스로 느껴졌을 법하다"고 했다.

포크의 기록은 서양의 코스 요리처럼 시차를 두고 음식을 내오는 식사 형태가 전통 한식 상차림에도 있었음을 입증하는 최초의 근거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박채린 박사는 "(포크 문서에서) 사찰·주막에서의 음식 경험 및 지역별 특산물, 재배 작물의 현황과 생산량 통계, 상점에서 파는 식재료, 여정 중 주고받은 음식물이나 외식 물가 등 식생활과 연계된 다양한 정보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추가 연구를 통해 개화기 식문화 분야에서 더 풍부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살아서 조선의 근대화를 도왔던 포크. 이제는 그가 남긴 기록이 잊고 있었던 우리의 식문화를 기억하고 되살리기를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