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40대와 제조업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이 가장 아픈 부분"이며 우리 경제가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판단하에 해외 출장 중인 경제부총리의 귀국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소집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결국 기업의 투자로만 만들어진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라면 희망을 가져 볼 만하다.

그런데 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라는 것이 건설업을 중심으로 재정 투입을 대폭 늘리고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기준 금리를 3개월 동안 0.5% 내리게 하는 등의 거시경제적 조치만으로 끝난다면 아까운 실탄 낭비만 하게 될 것 같아서 걱정된다. 그래서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경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좀 얘기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중국에서 되는 일은 한국에서도 다 되게' 하는 규제 혁파이고 또 하나는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일이다. 특히 전자는 해야 할 일을 못 한 정도이지만 후자는 해야 할 일은 못하면서 해야 할 일과 함께가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 오늘은 후자에만 집중하기로 하겠다.

일자리 만들기에 가해진 첫 번째 타격은 2013년 대법원에 의한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이다. 정기적·고정적·일률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보수가 통상임금이라는 판결은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형적인 임금 체계의 정상화라는 과제는 생략한 채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업의 부담을 수십조원이나 늘려 놓았고 그만큼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다음은 국회의 입법으로 2016년부터 시행된 '정년 60세 의무화'이다. 당시 기업의 평균 정년이 57.3세였다. 호봉제라고 하는 기형적 임금 체계 때문에 퇴직할 나이가 되면 보통 취업할 때의 3배 정도의 임금을 받기 때문에 한 명이 퇴직하면 3명을 고용할 돈이 생기는 나라에서 3년치의 퇴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청년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분석이 필요 없었다.

국회도 이 점을 우려해서 조문을 하나 신설해 가면서 '임금 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그 조치를 해야 할 주체도 밝혀져 있지 않고 불이행 시의 벌칙도 없기 때문에 이 '필요한 조치'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과연봉제와 임금피크제의 도입을 위한 박근혜 정부의 노력들은 이 정부 들어서 다 없던 일이 되었다. 이 정부 나름의 임금 체계 개편이라는 직무급 도입도 도무지 성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벌써 65세 정년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도 이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10%의 고율 인상이 계속되었고, 최근 10년 평균이 8% 정도였다. 2017년에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 수가 266만명, 13.3%에 이를 정도로 이미 최저임금은 너무 올라 있었다. 여기에 작년, 금년 16.4, 10.9%를 올린 위에 5일당 하루치의 주휴수당(20% 추가 부담)까지 지급하라고 하니, 엄정하게 집행한다면 폐업과 실직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2018년 최저임금을 못 받는 사람의 수가 311만명이었다는데 2019년 지금 삶의 현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노동도 값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들 것인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이라는 원래의 취지에 그치면 좋겠지만 임금 인상이 당연히 수반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안 되면 희망 고문이 될 것이고, 된다면 미취업자의 취업을 그만큼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상응하는 임금 감액이 이루어진다면 일자리 나누기 효과가 있겠지만 강한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미 취업해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일들이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이 벌어졌고, 이 모두가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누적된 효과로 인한 고용 부진을 만회하자면 특단의 각오가 필요하다.

취업자에게 유리한 일을 해 줄 때마다 미취업자에게 유리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조치를 조금씩이라도 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정부가 일자리 정부가 못 되고 임금 정부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미취업자에게만이라도 취업의 자유를 주는' 노동 개혁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