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Tu-95 폭격기.

한·러 합동군사위원회를 하루 앞두고 러시아 군용기 6대가 22일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우리 공군 전투기가 대응 출격에 나섰다. 오는 23~24일로 예정된 한러 합동군사위 회의에선 양국 공군간 '비행정보 교환용 직통전화'(핫라인) 설치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시기와 형식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 방지를 위해 MOU를 추진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또다시 침범한 것이다.

합참은 이날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 1대, SU-27 전투기 3대, TU-95 전략 폭격기 2대가 동해 KADIZ에 진입했다"며 "우리 군은 울릉도 북방에서 미상항적 포착 시부터 공군 전투기를 긴급 투입해 추적 및 감시비행과 경고방송 등 정상적인 전술조치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러시아 군용기들은 오전 9시 23분경 순차적으로 KADIZ에 진입해 오후 3시 13분경 6대가 모두 KADIZ에서 이탈했다. 6시간 동안 KADIZ를 넘나들었던 셈이다. 러시아가 올 들어 KADIZ에 진입한 것은 20회에 달한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은 아니지만 타국의 항공기가 영공을 무단 침입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 설정된 구역이다. 각국의 방공식별구역에는 외국 비행기 통행은 가능하지만 통행 이전에 해당 국가에 통보를 하는 것이 관례다. 군의 한 소식통은 "러시아는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지 않아서 다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에 무단진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러시아 전투기와 폭격기 등이 울릉도와 제주도 등을 거쳐 충남 태안 인근에서 기수를 돌려 다시 왔던 경로를 돌아간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격 편대군'이 구성돼 온 것은 KADIZ 무단 진입 수준을 넘어 군사 작전에 가깝다는 것이다.

합참은 지난 8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주변국 항공기의 KADIZ 침범 방지를 위한 군사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한·러 공군 간 '핫라인' 설치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었다. 양국 중앙방공통제소(MCRC)간 직통전화를 설치해 방공식별구역과 인근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에 대해 비행정보를 교환하겠다는 것이다.

한·러 공군 간 핫라인 설치는 지난 2004년부터 협의가 시작됐다. 작년 8월 핫라인 설치에 양국이 합의했고, 같은해 11월 MOU 문안 협의를 완료했다. 이후 러시아 측의 소극적인 태도로 후속 절차가 진행되지 않다가 지난 7월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면서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자 러시아 측도 협의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2~23일 열리는 한·러 합동군사위원회에서 KADIZ 사태 재발 방지와 핫라인 설치를 위한 MOU 체결 문제 등을 협의하기로 했으나 러시아 군용기가 또 KADIZ에 진입하면서 러시아 측의 재발 방지를 위한 진정성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핫라인의 효용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 국방부와도 2015년 12월 직통전화를 개통했지만, 정작 양국간 통화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중국의 KADIZ 진입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