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역사'는 서구학계 최신 연구 성과를 집약한 수준 높은 총서로 이름이 났다. 지금까지 나온 중국·일본·인도·이란 등 국가별 시리즈는 연구자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교과서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력 있는 연구자들이 집필하고 길게는 50년 가까이 기획·출판이 이뤄지는 등 최고 연구서를 만들기 위해 공들이기 때문이다.

김호동(65) 서울대 교수는 미할 비란(Michael Biran·54)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와 함께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 책임 편집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중앙아시아와 몽골제국 연구로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는 석학들이다. 지난 16일 서울대 중세르네상스연구소와 재단법인 리앤원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두 사람을 만났다.

김호동 교수는 "2021년쯤엔 '몽골제국사' 두 권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몽골제국 관련 사료(史料)를 소개하는 두 번째 권은 아랍·페르시아·몽골·러시아 등 17개 언어로 된 자료를 다룬다"고 했다. 미할 비란 교수는 "일본·중국·몽골·러시아·한국부터 구미 연구자까지 40명 넘는 집필진이 참여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몽골제국사' 편찬은 2014년 시작됐다. 몽골제국사를 전공한 두 사람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출간 제의를 하고 집필자 선정, 원고 검토·수정 작업을 함께했다. 두 교수는 "몽골제국은 4칸 국으로 나뉜 뒤에도 기본적으로 통합을 유지했다. 제국을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하는 최근 연구 성과를 총서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요한 22세 편지 수신자는 고려 충숙왕 아니다"

김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주목할 만한 발표를 했다. 2016년 교황청 문서고에서 교황 요한 22세가 1333년 10월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서한이 발견됐다는 기사가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대주교와 선교사를 파견한다는 내용의 이 서한은 한반도의 천주교 전래사를 250년 이상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 증거처럼 보였다. 지금까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온 스페인 출신 세스페데스를 한반도에 처음 온 신부로 봤다.

몽골제국이 지배한 13~14세기는 ‘대여행의 시대’로 불릴 만큼 유라시아 대륙을 오가는 여행자가 많았다. 왼쪽은 1375년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만든 세계지도인 ‘카탈루냐 지도’. 중국으로 가는 카라반이 위쪽에 그려져 있다. 오른쪽은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 책임편집을 맡은 김호동 서울대 교수와 미할 비란 히브리대 교수.

하지만 김 교수는 "교황의 서한 수신자는 충숙왕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19세기 말부터 서구 학자들이 이 서한 수신인을 '고려국왕 충숙왕'(라틴어 원문은 Regi corum, Soco(또는 Sece) de Chigista)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Soco'를 충숙으로 해석한 것은 잘못이다. '충숙(忠肅)'은 죽은 다음에 받은 시호다. 그는 교황 서한보다 6년 뒤인 133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충숙'이라는 호칭이 서한에 나올 수 없다." 김 교수는 몽골 북방의 코리 국왕 세체투(Secetu) 또는 카라코룸왕인 세체투 두 명 중 한 명을 수신인으로 꼽았다. 둘 다 교황 사절단이 몽골제국 수도 베이징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이다.

13세기 중반 몽골 원정군은 중동을 거쳐 헝가리·폴란드까지 몰려갔다. 몽골 군대의 학살과 파괴는 유럽인들을 경악시켰다. 미할 비란 교수는 이런 비극 중에서도 몽골제국이 이룬 건설적 측면에 주목한다. '역사상 최대 제국이 탄생하면서 외교사절, 군인, 기술자, 상인, 난민 등 유라시아 대륙에서 수백만명 규모의 인구 이동이 이뤄졌다. 그 결과 의학·천문학·지리학 등 과학기술부터 미술, 음식, 패션까지 광범위한 교류가 일어났다. 중동에서 유래하고 몽골족이 선호한 면(麵)과 빙과(셔벗)는 중국과 이탈리아로 확산됐다.'

비란 교수는 이를 '초기 지구화'(early globalization)로 규정한다. 몽골제국의 성공으로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몽골식 복식, 두발, 음식, 음악이 유행했다. '타타르복'(Tatar dress·소매가 좁은 셔츠 위에 걸쳐입는 헐렁한 양단 웃옷)으로 알려진 몽골 복식은 14세기 중반 잉글랜드부터 원·명나라, 이란, 티무르제국, 이집트, 북인도까지 휩쓴 '중세의 청바지'였다는 것이다. 비란 교수는 "지금의 지구화된 세계는 칭기즈칸의 제국 만들기의 산물로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