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에 맞추려고 무리하게 정규직화를 추진하다 공공기관들이 청년 채용을 늘리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이런 응답은 쏙 빼고 보도자료를 낸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동시에 청년 채용도 늘려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부작용을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고용부가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에게 낸 '공공기관의 청년 고용 미이행 사유' 자료에 따르면, 작년 조사 대상 447곳 중 80곳(중앙 공공기관 53곳·지방공기업 27곳)이 '정원 3% 이상 청년(15~34세)을 의무 고용하라'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16곳(11.9%)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규모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서"라고 답했다.

고용부는 지난 2월 27일 이재갑 고용부장관이 참석한 청년고용촉진특별위원회 결과를 담은 회의록에 이런 내용을 넣었고, 특위 위원들에게 배포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회의록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고, 회의 결과를 요약한 보도자료에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청년 고용에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을 뺐다.

◇불리한 결과는 빼놓고 공개한 고용부

정부는 청년 실업 대책의 하나로 공공기관은 한 해 정원의 3% 이상을 반드시 청년으로 신규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어기면 경영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그럼에도 지키지 않는 곳이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지난해 신입사원 58명을 뽑았는데, 정원의 1.89%밖에 되지 않아 3%에 미달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그 이유 중 하나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원의 규모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서울 종로구시설관리공단과 국립대구과학관도 각각 2명(2.02%)과 3명(2.17%)을 새로 뽑았는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청년 채용이 적은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런 조사 결과는 숨겼다. 대신 청년 의무 고용을 못 한 이유로 "청년 채용을 위한 결원 부족, 결원은 있으나 인건비 부족, 경력·전문자격 채용에 따른 연령 초과 등"이라고만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청년 일자리를 줄인다는 결과를 고용부가 감추려 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부 관계자는 "당시 회의에 참석한 여러 청년 단체가 회의록을 봤고, 보도자료에 모든 걸 담을 수 없어 빠진 것이다"라며 "무엇을 감추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하는 답 나오게 한 설문이란 비판도

정부의 설문 문항을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때문에 청년 고용을 못 했다는 답이 적게 나오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년 고용 미이행 사유를 객관식(중복 응답)으로 제시했는데, ▲정원(규정된 인원)과 현원(실제 인원) 격차 적어 청년 채용을 위한 결원 부족(응답률 55.3%), ▲결원은 있으나 인건비 부족 등으로 증원 곤란(47.4%)이라는 항목도 포함됐다. 그런데 정원과 현원 격차가 줄고 인건비가 부족해졌다는 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나타난 측면이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비슷한 답변 항목들이 함께 제시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때문이라는 항목은 상대적으로 적게 집계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보라 의원은 "정부가 정규직 전환 정책의 부작용으로 청년 채용이 줄어드는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