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재판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재판이 끝난 뒤 검찰과 변호인, 피고인 등을 향해 "늦게까지 재판하게 돼 대단히 미안하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한 재판이 밤 11시 30분이 다 돼서야 끝났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식의 사과를 한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지난 16일에도 오전 10시 시작한 재판이 밤 10시 20분에 끝났다. 그는 그때에도 "미안하긴 한데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지난 7월에는 재판이 밤 11시를 넘기자 양 전 대법원장이 "더는 체력이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사건 재판은 매주 한두 차례 열린다. 다른 사건에 비해 적지 않은 횟수다. 그런데도 박 부장판사가 매주 야간 재판을 하며 사과까지 해야 하는 것은 그만큼 재판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검찰이 작성한 양 전 대법원장 수사 기록만 A4 용지 17만5000쪽에 달한다. 차곡차곡 쌓았을 때 아파트 6층 높이이고, 무게는 875㎏이다. 검찰이 1t 트럭으로 운반해야 할 정도로 방대한 양의 수사 기록을 만들다 보니 재판도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측 증거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으면서 현직 판사 등 증인 신문도 200여명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시작한 재판은 이렇게 심야 재판을 해도 현재 10% 수준인 20여명의 증인 신문만 끝낸 상태다. 박 부장판사 스스로도 "이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정도다.

지난 11일에는 밤늦게 재판이 이어지자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이 "검찰도 오후 9시 이후 심야 조사는 안 하기로 했다는데 우리 재판도 9시 이전에는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가급적 밤 9시 이전에 재판을 끝내겠다고 약속했지만 방대한 재판 분량 탓에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때마다 사과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12시간씩 재판이 계속되다 보니 10~20분씩 주어지는 휴정 시간에는 법정 밖 작은 화장실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들, 검찰과 변호인 등이 한데 뒤섞여 서로 눈치를 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변호사는 "검찰의 '트럭 기소' 후유증"이라며 "재판부 입장에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