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주말뉴스부장

저녁 자리에서 가수 A가 잠시 화제였습니다. 노래 실력도 무대 카리스마도 '엄지 척' 느낌표인데, 인성은 물음표라는 것.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배 B와 후배 C의 노래를 허락 없이, 심지어 당사자가 거부하는데도 자기 맘대로 리메이크했다는군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오래된 소음(騷音)이었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노래를 '빼앗긴' 후배 C가 미니홈피에 남겨놓은 감정을 읽었습니다. "작곡가 입장에서 자신의 곡은 자식 같은 존재입니다. 왜 사전에 전화 한 통화도 없었을까요…." 잊지 못할 사랑과 잊지 못할 이별에 대한 쓸쓸한 경험을 쓴 곡이라 안 된다고 거절한 선배 B에게는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해야 하는 스타일이어서요"라며 자기 노래로 만들었다죠. 음악저작권협회가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원곡자의 허락 없어도 리메이크를 허용하기 때문에 비롯된 사달이었습니다.

A의 성품을 떠올리다 예술과 예술가의 윤리 혹은 예술가의 정치적 신념으로 생각을 확장합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77)의 추문. 희곡 '관객모독',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시나리오 '베를린 천사의 시'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오스트리아 작가는 작품과 창작자를 구분해야 하느냐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13년 전 그는 전범을 옹호한 적이 있습니다.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며 인종 청소를 자행한 전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 당시 유고슬라비아 국제사법재판소는 전쟁 범죄, 학살, 반인도적 범죄 등으로 그를 기소했고, 복역 중이던 2006년 감옥에서 죽었죠. 어머니 나라의 민족주의를 지지했던 한트케는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읽었습니다. "밀로셰비치는 비극의 주인공. 나는 작가이지 재판관이 아니다"라는 말도 그때 했었죠.

작가와 작품을 별도로 판단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근대까지만 해도 예술가의 일탈까지 낭만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현대는 더 이상 그들의 사생활과 작품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예술평론가는 이를 예술계에서 일어난 민주화라고 부르더군요. 단지 예술과 예술가에게만 적용되는 사례는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