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1일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과의 당초 합의를 깨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선거법 개정안보다 먼저 처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 파문'을 한시라도 빨리 무마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민과 정치권의 시선을 조 장관 의혹에서 '검찰 개혁'으로 돌리고, 공수처 발족을 통해 검찰 수사권을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법 처리 후 조 장관 사퇴를 염두에 둔 '출구 전략'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왼쪽)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11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과의 당초 합의를 깨고 선거법 개정안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및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먼저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국회선진화법을 자기 맘대로 해석한 조국 살리기용 꼼수"라고 했고, 다른 야 3당도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이 무리하게 공수처법 처리를 밀어붙일 경우 야 3당과의 공조에 금이 가면서 공수처와 선거법 처리가 동시에 어려워질 수도 있다.

민주당과 야 3당은 지난 4월 말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및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자유한국당의 저지 속에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공수처법 등 처리를 원하는 민주당과 선거제 개편을 원하는 야 3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이 본회의에 올라가는 시점이 달라졌다. 선거법은 지난 8월 29일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다수결로 통과했다. 이 법안은 법사위에서 최대 90일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11월 27일 이후에야 본회의에 부의(附議)될 수 있다. 반면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사법개혁특위에서 의결되지 못했고, 특위 활동 기간 종료 후인 9월 2일 법사위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국회 법제실의 보고서를 근거로 "법사위에 법안이 올라갔으니 90일간의 별도 체계·자구 심사 기간은 불필요하고, 사개특위에서 시작된 180일간의 숙려 기간(10월 28일 종료)만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말도 안 되는 일방적 주장"이라며 "내년 1월 말에나 상정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90일간 체계·자구 심사가 끝나는 12월 3일 상정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야 3당과의 합의를 지키려면 11월 27일 이후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고 공수처법을 처리해야 된다. 하지만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법안 심리에 속도를 내서 이달 말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국 파문을 덮기 위해 국회선진화법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다른 야당과 합의도 마음대로 뒤집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딴소리'에 야 3당은 "이런 식이면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줄 거라고 어떻게 믿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4당의 합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했다. 손학규 대표도 불편한 감정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당 김종대 수석대변인은 "하나(조국 장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다른 하나(4당 합의)를 깨자는 것"이라며 "개탄스럽다"고 했다.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야 3당이 모두 협조하지 않으면 공수처법은 본회의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해찬 대표가 야 3당의 반발을 사는 무리수를 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조국 사태를 덮는 것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공수처법 등은 지금부터 꺼내야 11월 말에라도 할 수 있다"며 "다만 야 3당과의 신뢰 관계가 깨지면 곤란하다"고 했다.

청와대와 여권은 최근 '조국 사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정치권과 각계 원로, 학자 등에게 여론 수렴을 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조 장관 논란이 커지자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이 여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있고 이는 노영민 비서실장에게도 보고되고 있다"며 "노 실장이 이 의견들을 정리해 조만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선 "공수처법이 통과되면 사법개혁 완수를 명분으로 조 장관 사퇴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이달 중 공수처법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최근 동교동 원로그룹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선 조 장관과 윤 총장이 함께 물러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