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완스란 메뉴판에만 존재하는 신기루 같은 음식이었다. 보통 해삼쥬스와 함께 메뉴판 가장 아래쪽을 차지한 그 이름은 화보 속 연예인처럼 이름만 알 뿐이었다. 그렇게 쿵짝쿵짝 4분의 4박자 리듬에 맞춰 짜장, 짬뽕, 볶음밥, 탕수육을 전전하며 30대에 다다랐다. 가끔 양장피와 팔보채까지 넘봤지만 여전히 난자완스는 어떻게 생긴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취향이 댄스음악에서 트로트로 변해가듯 식사만 뚝딱 해치우고 일어나던 옛날과 달리 한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중국 남부 지방에서 유래했다는 난자완스의 출현 빈도도 잦아졌다.

난자완스(앞)와 짜장면.

고기를 동그랑땡 모양으로 굴려 살짝 튀기고 청경채 등 채소와 함께 볶아 낸 난자완스는 밀가루 반죽을 두껍게 입힌 다른 요리보다 위장에 덜 부담스러웠다. 자극적이지 않은 담담한 소스에 담긴 고기 경단을 씹다가 친구의 말에 장단을 맞추며 채소만 슬쩍 골라 먹기도 했다. 난자완스의 핵심은 신선한 고기와 간결한 조리에 있다. 후추, 생강의 향긋한 향을 살짝 입힌 고기 경단이 질겨지지 않게 데치듯 튀긴 뒤 높은 열기 위에서 소스를 옷처럼 입혀 내면 된다. 말은 쉽지만 늘 실천이 어렵다.

서울 명동에 자리한 '개화'는 말이 무거운 대신 실천이 앞서는 곳이다. 중앙우체국 옆 골목 한성화교소학교 부근에 있는 이 집은 점심시간이 되면 골대 앞 혼전 상황처럼 종업원과 손님이 뒤엉킨다. 직원들은 독일 병정처럼 쉬지 않으며 먹는 사람들도 그 장단에 맞춰 먹기를 멈추지 않는다. 거대한 십대 청소년 위장이 된 것처럼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땀 흘리고 계산한다. 하지만 음식은 늘 제자리에 앉고 맛은 굳건하게 선다. 별 재료 들어가지 않은 묽은 짜장면마저도 기본 타율 이상을 하며 고추잡채, 팔보채 같은 요리류도 심심치 않게 홈런을 날린다. 이 집의 난자완스 역시 5번 타자 정도 되는 펀치력을 가졌다. 열기를 쐰 다진 마늘의 고소한 맛이 밑에 깔리고 간간하고 되직한 소스가 그 위에 놓였다. 채소는 아삭하게 씹히고 고기 경단은 이에 눌려 얌전히 부서진다. 매일 정시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맛이다.

명동을 떠나 해군회관과 서울지방병무청이 있는 대방동에 가면 '대성관'이 있다. 1946년 문 연 이 집은 낮게 자리 잡은 외관부터 쌓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파스텔 톤으로 칠한 외벽은 1980년대 달동네에 흔히 있던 풍경이다. 주변으로 아파트가 높게 섰고 공사 중인 도로는 차의 깜빡이와 인부의 수신호가 엇박자를 낸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유행도, 종잡을 수 없는 시대 흐름도 비껴간 이곳은 여전히 나이 든 주인장이 계산대를 지키고 허리 굽은 요리사가 중화냄비를 잡는다. 손님들은 윤이 반짝 흐르는 낮은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주문을 넣고 순하게 음식을 기다린다.

서울 대방동 ‘대성관’

양파와 다진 고기로 맛을 낸 짜장면은 달고 짜게 혀를 잡아채기보다는 고소한 풍미와 매끈한 식감을 지녀 어른과 함께 온 아이들 차지가 된다. 짬뽕은 못 견디게 맵거나 태운 것에 가까운 불맛을 채우기보다는 고춧가루를 뭉근히 기름에 우려 맛이 튀지 않는다. 노신사들은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를 닦으며 이 짬뽕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손자 손녀들은 짜장면을 입가에 잔뜩 묻힌다.

테이블 중앙에 놓이는 것은 탕수육과 난자완스다. 탕수육은 단단하기보다는 포슬포슬한 튀김옷에 과하지 않게 달달한 소스를 버무렸다. 겉은 약간 저항감이 느껴지지만 이내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난자완스는 무너지지 않고 멀리 있지 않은 낮은 산처럼 담담하고 든든하다. 살짝 매콤한 첫 맛, 마늘과 참기름이 어울려 다가오는 조밀한 감칠맛, 죽순과 청경채 등 채소의 싱그러운 식감, 기름에 튀겨 바삭하면서도 속은 연한 고기 경단이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차분한 왈츠를 추듯 하나가 된다. 딴따단 딴따단, 4분의 3박자로 느리지만 우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