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창간 100년을 맞아 기획한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운동의 일환으로 각계 명사들이 손글씨로 써서 보내온 ‘내가 사랑한 우리말’ 연재를 시작합니다.

굳어진 명사보다는 항상 변하고 움직이는 동사가 좋다. 그중에서도 우리 몸에 배어 있는 말이 "산다"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저도 모르게 "사람 살려"라고 외친다.

아무리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해도 "헬프 미"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me)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는 거다. 사람이라는 말부터가 옛말 사르다(살다)에 미음(ㅁ)을 붙여 만든 명사가 아닌가. '삶'이란 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자의 생(生)은 풀싹이 돋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거라 하지만 한글의 '삶' 자에는 '사람'이라는 글자 모양이 숨어 있다고들 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청산별곡(靑山別曲)은 천 년도 전의 옛 노래인데 그렇게 혀가 잘 돌아갈 수가 없다. '살어리'를 현대 어감에 맞춰 "살아리"로 고치고, "아리"에 머루랑 다래랑의 "랑"을 갖다 대 보면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아리랑"이 꼬리를 문다. 아리고 쓰린 목숨이라 해도 "랑" 자를 더하면 아리랑 쓰리랑 천 년의 노래가 된다.

눈물방울 같은 동그라미 이응(ㅇ) 자 받침들이 꽃잎에 떨어져 찬란한 구슬이 된다.

나는 그런 우연들이 좋다. 말놀이, 글자 놀이를 하다 보면 ㅅ 자로 시작하는 '살다'와 '사람'의 굴림은 채마밭 푸성귀처럼 싱싱하고 그 글씨 모양은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내 관념의 살점을 찢는다. 무겁고 한심한 세상, 혼탁한 거리. 늪 속에 빠진 사람들이 지금 외친다. 사람 살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언제나 늦게 왔던 기병대가 아니다. “사람”과 “살다”가 한데 엮인 든든한 “삶” 자가 견고한 보루처럼 우리를 지키고 있다. 살다. 이 한 마디로 나는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생명화 시대의 문명론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