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만에 열린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됐다.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협상이 열리기 직전 이미 결렬을 예상하면서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이어가는 것은 비핵화 조건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제재 대열에서 이탈시키기 위해 '비핵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을 얻으려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북한 내부를 알고 있는 그의 이 예상은 다시 한 번 적중했다.

사실 태 전 공사의 예상은 김정은의 행태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협상에서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포함한 로드맵을 작성하고 각 단계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대가로 대북 제재 일부 완화, 종전선언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은 비핵화 대화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오로지 '완전한 제재 해제, 체제 보장 조치가 먼저'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비핵화의 가장 기초인 '비핵화 개념' 논의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진짜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핵시설 신고·검증·폐기의 로드맵 작성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핵 포기를 전제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다. 북이 애초에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게 그나마 이번 협상의 성과라면 성과다.

김정은은 외교 업적이 궁한 트럼프를 몰아붙이면 핵 동결과 제재 해제를 맞바꿀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북은 이날 미국에 '연말까지'라는 시한을 주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위협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대북 외교 최대 치적으로 '핵실험·ICBM 실험 중단'을 꼽아왔는데 북이 노골적으로 이 레드라인까지 건드리며 트럼프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가 이 술수에 넘어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미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김정은은 핵 보유 꿈을 버리지 않는다. 한·미의 모든 안보 전략은 이 명백한 현실의 토대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 북과 협상을 계속하되 유일한 지렛대인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으로 북핵을 무용지물로 만들 실질적인 군사적 대응책도 함께 수립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