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에 사는 이모(49)씨는 지난달 부친상을 4일장으로 치렀다. 당연히 3일장으로 생각했는데 서울 인근 화장 시설 예약이 다 차 있어 어쩔 수 없이 발인을 하루 미뤘다. 이씨는 "상조 회사 사람들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이씨처럼 장례 일정을 바꾸거나 다른 지역의 화장장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화장 시설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화장 시설 확대 등을 위한 장사 시설 설치·지원 예산이 올해 445억원보다 79억원(18%)이나 줄어든 366억원(수목장 등 자연장 관련 예산 포함)만 책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은 올해보다 10조원 이상 늘어나는데 장사 시설 관련 예산은 거꾸로 줄었다.

서울 3500명·경기 1만5000명분 부족

보건복지부가 4일 국회 보건복지위 정춘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화장장 부족은 심각한 지경이다. 서울의 경우 화장로가 하루 3.3개, 부산은 4.5개, 대구는 0.7개, 경기도는 14.5개가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3만8000여건을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2개 화장장에서 32개 화장로를 가동해도 3만4500여건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3500여건은 다른 지역 화장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연간 5만여건의 화장이 이뤄지는 경기도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화장장에서 3만4000여건만 처리가 가능해 1만5000여건은 인천이나 충청 등의 화장장을 이용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 경기, 부산, 대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화장 처리 시설이 남아돌고 있지만, 인구 밀집지역인 이 4곳은 제때 시설을 증설하지 못해 만성적인 화장시설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연간 사망자 30만명 시대, 화장장 부족

화장장을 늘리지 않으면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올해 '사망자 수 30만명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29만8800명으로 198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다. 여기에 화장률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86%를 넘었고, 올해는 87% 이상으로 예상된다.

말기암 환자 등을 위한 호스피스 전문 기관 지원 예산도 올해 75억원에서 내년 88억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망자는 급증하는데 관련된 예산들은 감소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반면 현금성 복지는 급증세다. 한 번 정해놓으면 줄일 수 없기 때문에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기초연금의 경우 올해 예산은 11조4950억원이었는데 내년에는 13조1770억원으로 불어난다. 노인 일자리 예산은 8220억원에서 1조1990억원으로 늘어났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초연금 인상 같은 공약 예산, 노인 일자리 같은 선심성 예산이 급증하면서 화장 시설이나 말기암 환자 등을 위한 호스피스 예산 등이 유탄을 맞은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화장장 신설의 경우 혐오 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예산 배정도 저조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