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가 추진하다 백지화한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개별 대통령기록관 예산이 지난 8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업이 정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추진됐고,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 원장이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담당 비서관에게 직접 보고한 사실도 밝혀졌다. 논란이 불거진 뒤 국가기록원장은 "세종시에 있는 기존 통합 대통령기록관의 서고(보관실)가 부족해서 개별 기록관을 추진했다"고 해명했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1일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제37회 국무회의 임시회의록' 등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대통령기록관 문제에 대해 대통령 본인은 "지시하지 않았다"고 했고,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내셨다"는 말까지 전했다. 이에 대해 박완수 의원은 "청와대와 정부가 계획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국정 과제로 추진한 사업인데 "모른다"

국무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 건립을 위한 172억원의 전체 예산 가운데 부지매입비, 설계비 등 32억1600만원이 들어가 있는 2020년도 예산안은 지난 8월 29일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국무회의에는 이낙연 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유은혜 사회부총리와 16개 부처 장관이 전원 참석했다. 청와대의 노영민 비서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정부 인사 등 19명이 배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국무회의에서 500조원이 넘는 예산안을 의결했는데 불과 30억원 정도인 예산을 어떻게 일일이 확인했겠느냐"고 하지만 국정 과제로 추진됐다는 점,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준비하는 예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 야당의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기록관 건립은 지난 2년간 정부가 추진한 국정 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국정 과제 8-1 혁신적인 열린 정부(국가기록원의 독립성 강화 및 대통령기록 관리 체계 혁신)'라는 항목이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된 보고도 받았다. 지난 2월 27일 국가기록원과 청와대 간 첫 협의가 있었고, 3월 26일과 27일 이소연 국가기록원장과 기존 통합 대통령기록관의 최재희 관장이 조용우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에게 별도 보고까지 한 사실도 확인됐다.

기존 대통령기록관 사용률 부풀려

"통합 대통령기록관의 서고 사용률이 83.7%에 달해서 개별 기록관이 필요했다"는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의 해명도 일부 서고의 상황을 전체 사용률처럼 부풀린 것이다. 현재 시청각 자료 서고의 사용률은 37.3%, 일반 문서 서고는 42%에 그친다. 비밀문서 서고는 50%, 지정 기록물 서고는 70%로 집계됐다. 83.7%는 대통령이 재임 중 사용한 가구 등 집기, 외국 정상으로부터 받은 선물 등을 보관하는 서고의 사용률이다. 국가기록원은 현재 운영 중인 통합 대통령기록관의 수용 공간이 적어도 10년 이상 충분한 것을 알고도 개별 대통령기록관을 추진했다. 2016년 문을 연 통합 대통령기록관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결정해 건립된 것으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5명의 대통령 기록물을 보존·관리하도록 설계됐다. 2032년까지 사용이 가능해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차기와 차차기 대통령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