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손흥민(27·토트넘)이 수비수보다 앞선 거리는 딱 성인 손가락 한 마디가 될까 말까 했다.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려웠지만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은 오프사이드라고 집어냈다. 그런데 초정밀 판정을 해낸 VAR은 경기 후 축구계의 성토를 받고, 반칙을 범한 손흥민은 되레 축구계의 위로를 받는 '피해자'가 됐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레스터시티전에서 시즌 첫 도움을 올린 손흥민이지만, 전체적으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오른쪽 위·아래 캡처 화면이 1—0으로 앞서던 후반 19분 손흥민의 오프사이드 판정 상황이다. 손흥민의 몸통(어깨 끝·빨간 선)이 상대 무릎(파란 선)보다 미세하게 앞섰다고 VAR이 판독했다(우측 위). 우측 아래 화면처럼 오프사이드를 판단하는 시점은 VAR 심판이 결정하기 때문에 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

◇VAR, 손흥민·토트넘 울리다

2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레스터시티 경기. 토트넘이 1―0으로 앞서던 후반 19분 세르주 오리에가 추가 골을 넣었다. 오리에는 신명나는 댄스로 골을 자축했다. 하지만 주심이 곧장 이어폰에 손을 댔다. 오리에에게 공이 전달되기 전, 손흥민이 후방에서 넘어온 동료의 패스를 이어받는 상황이 '오프사이드'일 가능성에 대해 VAR 판독이 시작된 것이다. 2분여 후 이 장면은 오프사이드로 판정돼 골이 무효 처리됐다. 손흥민의 어깨가 상대 수비수 무릎보다 미세하게 앞섰다는 게 VAR 판독 결과였다. 리플레이 화면엔 손흥민의 어깨와 수비수의 무릎이 잔디와 수직을 이루는 선이 오프사이드 '증거'로 제시됐다. 두 선은 거의 겹쳐 있었다. 데일리 메일은 "손흥민이 앞선 정도가 단 1.6㎝"라고 전했다. 쐐기골이 무산되며 분위기가 식어버린 토트넘은 이후 곧바로 동점골을 내줬고, 후반 막판 역전골을 얻어맞아 1대2로 패했다. 손흥민은 해리 케인의 선제골을 도와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지만 결과에 속이 상한 듯 인터뷰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잉글랜드선 여전히 'VAR 불신'

'1.6㎝ 오프사이드' 판정 직후 개리 리네커는 "심판들이 VAR을 쓰레기처럼 사용했다"고 했다. 맨유 골키퍼 레전드 피터 슈마이켈은 "현 상태라면 난 절대로 VAR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애초 VAR이 축구계에 도입된 건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최소 개입으로 최대 효과 내기'가 목표였다. 리네커 등은 손흥민 사례에선 VAR이 이런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 수 있는 상황에서 VAR이 너무 과도하게 경기에 개입했다는 취지다. 이날 인터넷엔 "손흥민의 속눈썹이 오프사이드에 걸렸나 보다"라며 VAR을 조롱한 글이 인기를 끌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VAR을 올 시즌 처음 도입했다. 다른 리그보다 1~2년 늦게 시행했다. 축구 종가(宗家)여서인지 새 제도 도입에 유달리 보수적이다. VAR 때문에 경기 흐름이 끊겨 축구답지 않다는 주장과 VAR의 완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진 못해 우여곡절 끝에 VAR을 채택했지만, 탐탁지 않아 하는 건 여전하다. 아직도 팬들은 물론 선수나 감독 사이에서 '오심도 축구의 일부'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오차 범위 인정해야"

손흥민 오프사이드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도 그런 점과 관련 있다. VAR도 판정에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판독은 기계가 하지만, 판독을 할 기준은 여전히 사람이 정하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에선 공이 동료의 발에서 떠난 순간이 판독 화면의 기준이 돼야 하는데, 현재 장비가 0.01초, 0.001초까지 패스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살짝 앞이나 뒤 장면을 판독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오프사이드 장면에서 손흥민은 몸통이 상대보다 앞서 반칙으로 판정됐다. 오프사이드에선 손이나 팔은 기준에서 제외한다. 문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팔이고 어깨며 몸통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심판이라면 좀 더 얼굴 쪽에 가까이 선을 그었을 수 있고,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에선 "오차 범위를 인정하자"거나 "판독이 어려우면 주·부심에게 그냥 맡기자"는 의견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