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외국의 '피처 필름 프로그램'이라는 데 지원해서 5000달러 정도를 손에 넣게 됐다. 후반 작업하면서 돈이 많이 모자랄 때 이 자금이 꽤 큰 도움이 됐다. 예산이 적다 보니 영화를 빨리 찍어야 했다. 한 달 반 정도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스태프들에게 그래서 유난히 미안했다." 최근 8만명 넘는 관객을 모아 화제가 된 독립영화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의 말이다. 100주년을 맞는 한국 영화가 잇단 흥행 실패를 겪고 관객에게 외면받는 지금, '벌새'는 역설적으로 빛난다. 제작비 3억여원으로 만들었으나 세계 평단과 관객에게 고루 호평받은 '벌새'와 '우리집'을 비롯, 최근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들은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미쓰백' '돈' '말모이' 등도 여기 해당한다.

독립영화 '벌새'는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10만 관객 돌파를 향해 가는 중이다.

이들은 뻔한 흥행 공식을 피해간 덕분에 빛났다. '이미 본 것 같다'는 평을 듣는 한국 영화 특유의 남성 중심 서사가 없고, 폭력·욕설·성적 코드만을 긁어모으는 식의 짜깁기를 하지 않은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사의 그늘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으로 요즘 젊은 관객과 감응한 것이다.

관객 비율의 변화와도 맞아떨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감독 작품의 평균 관객 수는 59만3319명으로 전년보다 28.8%가 늘었다. 이지원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한지민이 출연했던 '미쓰백'은 16억5000만원의 적은 예산으로 제작됐으나 여성들 사이 '미쓰백 보기 운동'이 벌어질 만큼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