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나 어때?" 하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했다는 뜻이다. 못 알아듣고 "뭐가?" 하고 반문했다가 여러 번 타박을 받았다. 요즘은 고등학생 딸도 "저 어때요?" 하고 묻는다. 형제든 친구든 동료든 남자들이 이발한 뒤에 "나 어떠냐"고 물어보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머리에 대한 남녀의 생각은 천지 차이다. 하물며 머리를 깎는 삭발은 말할 필요도 없다.

▶두발 자유화 이전 학창 시절을 보낸 남자들은 모두 삭발한 경험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남자들은 입대 때 삭발하기 때문에 그 기분이 어떤지 안다. 그러나 여자는 대부분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 상상도 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가꿔온 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도 큰 결심일 텐데 아예 삭발이라면 어떤 심정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현대사에서 여자에게 삭발은 형벌의 한 형태였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2차대전 말 찍은 사진 '전쟁과 여인'은 삭발당한 프랑스 여자가 군중에게 둘러싸여 손가락질받는 장면이다. 여자는 나치 점령 당시 독일군과 맺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 그만큼 삭발은 여성에게 치욕적인 일이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하면서 여자도 머리를 모두 밀게 했다. 여자들 긴 머리카락으로는 카펫을 짜거나 독일 아이들을 위한 고급 인형을 만들었다. 지금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당시 잘라낸 유대인들의 머리카락이 전시돼 있다.

▶여배우들이 연기를 위해 삭발하는 경우도 화제가 된다. 강수연은 전성기 시절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찍으며 극중 삭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 영화 '지아이 제인'의 데미 무어, '매드맥스'의 샬리즈 세런도 삭발한 모습 자체로 화제였다. 탤런트 김정은은 TV 드라마에서 삭발하는 역할을 맡은 뒤 스타 반열에 올랐다. 연기나 비구니 말고는 여성이 스스로 삭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 강행에 항의하는 뜻으로 두 여성 국회의원이 잇따라 공개 삭발했다. 두 사람 모두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선전포고"라며 이에 대한 항의와 분노를 삭발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들로서는 더 이상 강한 항의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 국민은 뻔뻔하고 막무가내인 권력 못지않게 무기력하고 한심한 야당에도 짜증이 난다. 서울 광화문 앞에서 무슨 교통 캠페인 하듯 피켓 들고 서 있다 사라진 야당 지도부를 보니 삭발이라도 해야 했던 두 여성 의원이 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