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전경.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치매 노인에게 법원이 주거를 치매전문병원으로 제한하는 치료 목적의 보석을 결정했다. 치매 환자에 대한 치료적 사법을 위해 보석을 결정한 첫 사례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중인 A(67)씨에 대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치료적 사법은 법원이 형사 처벌보다는 피고인의 교화·치료를 목적으로 해 재범률을 낮추고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개념이다.

A씨는 보석과 동시에 주거가 치매전문병원으로 제한된다. 보증금은 없으며, 법원의 공판기일 출석 외에는 일체의 외출이 금지된다.

재판부는 A씨에게 병원의 조사와 양형조사관 등의 방문조사를 받도록 했고, 병원은 법원에 조사결과를 매주 1회 통지해야 한다. 재판부는 A씨의 자녀에게도 보석조건 준수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A씨는 구치소 수감 중 면회 온 딸에게 사망한 아내와 왜 동행하지 않았냐고 말하는 등 알츠하이머 치매증상을 보였다"면서 "재판의 신속한 진행보다는 적절한 치료를 위해 구속 상태를 풀어 A씨를 치매전문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한 후 재판을 진행할 필요가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치매환자인 A씨에게 구속 재판을 고수할 경우 A씨는 치료의 기회를 다시 얻기 어려울 수 있다"며 "현행 형사소송법 상 활용할 수 있는 보석결정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재판부는 입원 시점으로부터 약 1개월이 지난 시점에 법정이 아닌 A씨가 입원해 있는 치매전문병원에서 점검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점검회의에는 보석조건 준수 외에도 A씨에 대한 치료 상황과 치료 효과 등에 대해서도 다룬다.

재판부는 "신속한 결론의 도출보다는 A씨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그 경과를 살핀 뒤 양형심리 등 재판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